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씬짜오’ 베트남 여성의 말걸기] 고달픈 모임 장소 찾기 / 원옥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원옥금
주한베트남교민회장·서울시 외국인 명예시장


한국에서 설날에 온 가족이 모여 서로 이야기하고 격려하면서 음식을 나눕니다. 매년 설날, 고향으로 대이동 현상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설 문화는 베트남과 ‘참 비슷하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베트남 사람들도 설날 고향에 가려고 노력합니다. 피치 못해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서운하죠. 특히 해외에서 사는 교포들은 여러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못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에 사는 17만명의 베트남인들도 대부분 설날에 고향에 가지 못합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시가 식구들과 명절을 지내고, 노동자·유학생은 친구끼리 모이기도 하지만 서운함은 덜어지지 않습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텅 빈 공장 기숙사에서 혼자 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베트남교민회에서는 신년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신년회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고 그저 300~400명의 교민들이 모여 덕담을 나누고 간단한 고향 설음식을 나누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마땅한 장소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구청이나 시청의 강당은 외국인 주민들을 위해서도 개방될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갖고 이곳저곳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행사 예정일이 주말인 것이 첫번째 문제였습니다.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주말뿐인데 주민 센터나 구청 등 관공서는 공무원들이 쉬는 날에는 대관을 못 해주겠다고 합니다. 겨우 주말에 대관을 해주는 곳을 찾았지만 이번엔 음식 반입이 안 된다고 합니다. 내국인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음식 반입이나 조리를 하면 화재의 위험이 있고 음식물쓰레기 처리 문제도 생겨 관공서 내부 시설 관리 지침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공서 시설을 주민, 구민, 시민을 위해 만들었다고 이름도 다목적실로 정합니다. 그런데 파티는 안 된다, 음식은 반입 안 된다, 주말에는 대관이 힘들다고 하는 규정은 주민의 공공시설 사용 권리를 침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서로 친해지려면 같이 밥을 먹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민이 관공서 시설을 이용해 음식을 같이 먹고 얘기도 나누고 친목을 다지면 아주 좋은 일인데 관리의 편의성만 내세우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이 비어도 대관하지 못한 주민들은 할 수 없이 뷔페나 웨딩홀을 비싼 비용을 주고 빌립니다. 넉넉하지 못한 단체들은 그러기도 쉽지 않습니다. 청소를 확실하게 하고 음식쓰레기를 처리하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만들어 이용자가 지키도록 하면서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본래 취지에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설날은 다가오는데 모임 장소도 구하지 못해 이래저래 속상한 겨울입니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