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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세상 읽기] ‘사회 탓’을 해야 더 건강하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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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김양중 기자가 12월6일치 <한겨레>에 쓴 기사를 그대로 옮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생명표’를 바탕으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살고 어떻게 앓는지 잘 요약했다.

“지난해 마흔살이 된 ㄱ씨(남성)는 80.4살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은 27.5년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 12.9년은 병원을 들락거릴 가능성이 크다. ㄱ씨가 사망한다면 어떤 질환이 가장 위험할까? 2016년 현재 40살 남성의 사망 원인은 암(27.4%)과 심장질환(10.2%), 폐렴(8.4%), 뇌혈관질환(8.1%), 자살(2.8%) 등의 차례였다.”

10년 전과 비교하여 기대수명이 3.6년 늘어난 것은 예상한 희소식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훌쩍 넘어 세계 최고 수준까지 접근했다. 나쁜 소식은 기대수명 증가보다 병을 앓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출생한 아이가 병을 앓는 기간은 2년 전보다 0.8년 늘었고 건강기간은 0.3년 줄었다. 이제 ‘유병 장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었을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통계와 기사가 밝히지 못한 현실이 여럿 있겠으나, 나는 두 가지 심층 구조에 주목한다. 첫째는 평균 속에 숨은 불평등한 분포다. 2009년 우해봉이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45세 여성의 건강한 기대수명은 고졸 미만과 고졸 이상 사이에 약 7.8년의 격차가 있다. 2016년 현재 40세 여성의 건강한 기대수명은 ‘평균’ 46.2년이니, 계산하건대 생사의 불평등은 엄청나다. 불평등이 지속하면 곧 평균까지 낮출지도 모른다.

둘째로 주목할 것은 건강과 병의 원인. 현대 과학은 ‘다중’ 요인이 다차원으로 작용해 건강을 결정하는 것을 밝혀냈고, 유전, 행동과 생활습관, 환경, 사회적 조건, 의료, 스트레스 등이 고루 작용한다. 단순 목록보다는 이들 요인이 결과에 기여하는 정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특히 강조할 것은 사회적 조건. 2010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생사와 건강에 미치는 의료의 기여도가 전체의 20%인 것과 비교하여 사회경제 요인은 그 두 배인 40%에 이른다.

사회경제를 비롯하여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이 ‘중요한 40%’를 흔히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라 부른다. 앞서 기대수명 격차의 원인으로 등장한 교육수준도 그중 하나로, 이것 말고도 낮은 소득, 실업, 비정규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 부실한 주거, 차별 등이 비슷한 범주로 묶인다. 이들 조건이 얼마나 우호적인지가 좋은 의사와 큰 병원, 첨단 의료기술보다 더 중요하다.

평균과 불평등을 바꾸는 데 사회적 결정요인이 중요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그 요인을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득 불평등과 그 정책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보통 사람의 생사와 건강은 역전한다. 지난 10월 중순 대니얼 김이 <예방의학>이라는 국제 학술지에 낸 논문의 분석결과는 예상보다 더 놀랍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조세정책이 연간 2만9천여명의 사망자를 늘릴 것이고, (가상이지만) 샌더스의 조세정책으로는 약 3만1천명의 사망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시각으로 아동수당과 기초연금을 보면? 최저임금과 비정규 노동도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이라면? 건강 운명을 바꾸려면 더 많이 ‘사회’를 탓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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