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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테마진단] 착시경제와 법인세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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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모토롤라와 노키아. 지금은 전 세계 어느 나라든지 서민도 부자도 휴대전화 하면 삼성 갤럭시나 애플 아이폰을 쓴다. 하지만 20년 전, 25년 전만 해도 우리 손엔 모토롤라나 노키아의 접이식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그것도 사회적으로 좀 성공하신(?) 분들 손에.

그랬던 세계 1위 기업 모토롤라의 몰락은 '착각'에서 시작됐다. 모토롤라는 1990년대 중반 10년 만에 연 매출 50억달러에서 270억달러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1995년 이 기업은 야심 찬 신모델 스타텍 출시를 앞두고 한껏 들떠 있었다. 어느 기자가 모토롤라 고위 경영자 중 한 명에게 물었다. '무선통신 시장이 디지털 기술로 이동하고 있는데, 스타텍은 여전히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에 문제가 없을까요?' 돌아온 답변은 '4300만명의 아날로그 고객이 있는데 문제 될 게 뭐람.' 세계 1위였던 모토롤라는 그 후 1999년 시장점유율 17%로 추락하며 몰락의 길을 걷는다. 지금 전 세계인 손엔 갤럭시와 아이폰이 자리 잡게 되었고 말이다.

종합주가지수(KOSPI) 전체 시가총액 1600조원(12월 초 기준). 이 중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이들 두 회사 시가총액만 430조원. 코스피 상장기업 774개 중 2개 회사가 시총의 26.9%를 차지한다. 종합주가지수가 3000을 찍는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고, 시총도 계속 늘고 있다지만 이는 결국 두 기업이 이끌고 있는 현상인 듯하다.

지금 우리 경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착시경제'다. 삼성전자 4분기 영업이익은 16조원을 훌쩍 넘었다. 늘 그렇듯 사상 최대다. 황새가 뛰니까 뱁새도 뛰는 것 같지만, 주위에 기업 하시는 분들을 만나 보면 경기는 엄동설한(嚴冬雪寒)이다. 일반인들 인식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 기업 환경 개선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매출액 3000억원 이상인 기업에 매기는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전격 인상했다. 여기에 해당되는 기업은 77개 대기업이라고 한다. 같은 시기 미국 상원은 법인세율을 35%에서 20%로 인하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세제 개편에 대한 반응이 가장 뜨거운 것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입니다. 이들은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의 국내 성장을 제고하며 임금 지급 능력을 개선할 세제 개편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업들이 해외에서 나는 수익을 국내에서 올릴 수 있다면 이곳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할 것입니다."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의 말이다. 경기 진단은 비슷한 듯한데 우리와는 전혀 다른 답을 미국은 제시했다.

미국의 법인세 정책은 목적이 확실하다. 착한 기업, 나쁜 기업을 따지지도 않는다. 세금이 기업에 주는 인센티브를 십분 활용할 뿐이다. 다시 말해 세금을 내리면 국내에 투자가 늘어나고, 자국민의 소득 증가로 이어진다는 유인구조(incentive)를 기업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 법인세 인상은 목표가 무엇이었을까. 증세의 주된 목적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재정 건전성 확보를 꼭 기업이 투자할 돈을 걷어 해야 했을까. 투자 환경이 개선되고 기업 실적이 개선된다면 자연스레 법인세수도 늘어날 텐데 말이다. '혹시 재정정책의 일환이 아닌 경제 민주화란 명분 때문은 아니겠지. 이러다가 괜히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만 늘어나 배 아파지는 건 아닐까.' 잡다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의 법인세 인하는 시장에 상당히 큰 시그널을 줄 것이다. 투자처로서 미국 시장의 매력도가 상승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세율 인상의 근저엔 '기업의 실적이 좋다. 담세 여력이 있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을 걷어내면 같은 대기업이라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기업 입장에서 이번 법인세 인상은 어떻게 다가올까. 관전하시는 분들로부터 '삼성전자처럼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들이 있는데 문제 될 게 뭐람'이란 답변이 돌아온다면 앞에 말씀 드린 모토롤라 사례 일독을 권해 본다. 필자의 고언이 너무 때늦은 지적이 아니길 바라며.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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