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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토론] 낙태죄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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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찬반 측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의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 청원에 23만5000명 이상이 동의했다. 낙태죄 폐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이전부터 있었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의견 4대4로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폐지에 찬성하는 측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며, 반대하는 측은 태아의 생명권을 강제로 빼앗는 살인 행위라며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찬성 / 이유림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
원치 않은 임신에 무대책 여성만 처벌하는 건 부당

매일경제

이유림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


형법의 '낙태죄'는 낙태를 하는 것이 옳으냐 또는 그렇지 않으냐에 대해 사회적 조건과 개인의 삶의 맥락이 결여된 앙상한 윤리적 논쟁이기 이전에 임신을 중지하기로 판단한 여성을 국가가 범죄자로 규정하고, 징벌하는 것에 대한 문제이다. 1953년 피임법도 제대로 없던 시절부터 여성의 낙태는 범죄로 규정됐고 2017년 낙태죄는 낙태한 여성과 시술 의사만 처벌하는 법의 특성을 악용해 협박 수단이 되고 있다. 연인 관계에서 이별을 통보했을 때, 연인이나 배우자의 폭력을 고발했을 때, 이혼을 할 때, 낙태죄는 여성을 징벌하고 응징하기 위해서 악용되고 있다.

이는 국가가 낙태죄를 통해 규율하는 것이 과연 낙태라는 행위인지, 임신할 수 있는 몸을 가진 여성이라는 존재인지 질문하게 한다. 낙태라는 행위를 규율하고자 한다면 그 행위에 책임이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처벌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나 낙태죄는 여성만을 독박 처벌하고 있다. 모든 임신과 출산을 축복하고 환대하지 않는 사회의 질서 속에서 출산이 아닌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겨지는 임신이 존재한다.

매일경제

여성의 판단은 파트너의 결정, 가족의 의사를 비롯한 다양한 삶의 맥락과 개인의 노력만으로 돌파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인 조건 안에서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여성만을 '낙태'라는 사건의 책임 소재이자 징벌 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이는 오히려 임신과 출산이 일어나는 몸을 가진 존재, 그러한 사건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삶을 사는 존재로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여성이라는 존재를 처벌하는 것이다.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행위는 인공임신중절을 근절하는 게 아니라 위험한 시술을 부추기는 방법일 뿐이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의 허용만이 실질적으로 임신중단율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임신중지 결정에 허용 사유를 두지 않고 합법적으로 진료와 시술을 보장하고 있는 74개국의 사례가 이미 보여주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은 여성의 몸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국가가 이를 위협하고, 징벌하는 것, 그래서 병원의 돈벌이 수단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하기 어려우며 여성의 재생산 건강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사회적 낙인 없이 비혼모가 될 수 있는 권리, 결혼 여부, 성적지향, 장애와 질병,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실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의무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실질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반대 / 이동익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委 총무 공항동성당 주임신부
생명권보다 높은 권리 없어 폐지땐 생명경시 심해질 것

매일경제

이동익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委 총무 공항동성당 주임신부


필자는 낙태죄 폐지에 반대한다. 만일 우리 사회가 낙태를 합법화한다면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집단의 양심은 무디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우리 사회의 생명 경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법률이 허용하기 때문에 양심으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이라는 착각으로 온 국민을 호도할 것이라는 염려가 너무 크다. 낙태죄 폐지 논란은 여성의 자기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서로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세(勢) 대결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가치 판단에 있어 서로 우위에 있는 권리로 인해 자기선택권 혹은 생명권이 양보돼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한 논리의 배경에는 정당방위의 논제가 자리한다. 정당방위란 '자기 또는 남에게 가하여지는 급박하고 부당한 침해를 막기 위하여 침해자에게 어쩔 수 없이 취하는 가해 행위'(표준국어대사전)를 뜻하는데, 이는 중세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중(二重) 결과의 원칙'에 그 기원을 둔다. 곧 하나의 행위에 두 가지 결과, 선한 결과와 악한 결과가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 의도가 선하고 행위의 수단이 서로 상응(相應)하는 것이라면 악한 결과를 용인할 수 있다는 이론이며, 법리로 적용된 것이 '정당방위 이론'이다. 헌법재판소가 2012년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에 대해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현행 낙태죄를 합헌이라고 판결한 것도 정당방위의 법리 정신에 따른 판단이었다.

태아의 생명을 포함한 인간 생명에 대한 권리는 생명 이외의 그 어떤 것과도 상응될 수 없는 절대적 권리이다.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건강권 등이 인간의 기본권으로 당연히 존중돼야 하겠지만 생명권보다 더 우위에 있는 권리는 아니다. 물론 오늘의 현실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여성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런 탓도 없는 배 속의 아기에게 책임을 물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도록 공권력으로 차단하는 것이 과연 성숙한 시민 사회가 고집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 사회가 생명 존중의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 존중의 사회를 위한 일차적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가가 낙태죄 폐지, 존속 논쟁에 휩싸이기보다 생명 존중의 책임을 위한 다양한 정책 개발과 그 실행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느 누구도 출산에 방해받지 않는 나라, 비록 미혼 부모의 출산이라도 그 출산이 비난받기보다는 오히려 칭찬받고 장려되는 우리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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