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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The Blue Sea In The Blue House : 님을 위한 바다` 전혁림이라는 푸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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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면서 청와대로 다시 돌아온 작품 <통영항>(2006)이 언론에서 한참 화제가 됐었다. 이 작품의 원작인 <통영항>(2005)을 포함한 전혁림 선생의 작품 100여 점이 K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고미술과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으로 평가 받는 1세대 한국 현대미술 화가 전혁림의 전시가 유동인구가 많은 압구정 유행의 한복판에서 열리는 일은 매우 이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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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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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전혁림(1915~2010) 1915년생으로, 한국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체험했다. 학연과 지연 중심의 중앙 화단과는 일평생 거리를 유지한 채 독자적인 조형감각을 연마한 한국 현대미술의 1세대 작가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통영수산전문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렸다. ‘자연이 가장 훌륭한 선생’이라고 믿은 그는 오롯이 지방 화단에 머물며 한국 추상미술의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회화뿐 아니라 도자, 목조, 입체회화, 도자회화 등 광범위한 장르를 섭렵하며 후대의 청년예술가들에게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작품을 남겼다. 한국의 민화, 자수, 벽화 등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그림은 국적이 뚜렷해야 한다”고 말하며, 시인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시인 김춘수 등 지역 예인들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했다. 87세에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2002)로 선정되면서 그제서야 한국적 색면추상의 선구자로 조명을 받은 전혁림 화가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2010년 5월, 94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고향인 통영에 위치한 전혁림미술관은 책방 ‘남해의 봄날’ 바로 옆에, 화가를 껴안은 바다처럼 작품을 끌어안고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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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시름 잊게 해주던 통영 앞바다

얽히고설킨 돛배들과 떠오르는 태양의 조화. 파도를 강렬한 푸른 색으로, 들판과 섬을 황금빛으로 묘사한 <통영항>. 6m 층고는 높이 3m의 작품도 무리 없이 감싸 안는다. 선은 명쾌하고, 색채면에서는 최고다. 구순이 넘은 노 화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다. 다소 추상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구상적 이미지가 부드럽게 섞여 있어, 피어 오르는 밥뜸 연기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코발트블루 컬러로 이름을 알리며 ‘바다의 화가’가 된 전혁림. 평생 고향인 통영과 부산 지역을 떠나지 않고 우리 고유의 정서를 예술로 승화하는 일에 몰두했던 그는 언제나 ‘자연은 가장 훌륭한 선생’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이 사랑한 자연의 모습을 풍성한 색채감으로 담아냈다. 이번 특별기획전의 대표작은 현재 청와대 인왕실에 소장, 전시된 <통영항>(2006)의 원작, <통영항>(2005)으로, 전혁림 작가가 장장 91세의 나이로 호수처럼 잔잔하기로 유명한 통영 앞바다의 풍경을 높이 3m, 폭 6m의 캔버스에 옮긴 대작이다. 당시 집권 중이던 노 전대통령이 전혁림의 신작전 <구십, 아직은 젊다>의 개최소식을 접했고, 그 길로 사전 통지 없이 미술관을 방문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노 화백의 손을 맞잡은 자리에서 대통령은 “젊은 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통영 달아공원을 찾아 다도해를 내려다보며 마음의 위안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했고 이에 전혁림이 4개월간 작업에 매진해 새로 그려낸 것이 바로 이 2006년 작 <통영항>이다. 이후 작품은 통영 앞바다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시공간에 놓이게 된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전시된 후, 2009년부터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2017년 봄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의해 인왕실로 복귀하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온 것. 청와대에 걸려 있는 후속작은 대들보가 있는 인왕실 크기에 맞게 제작되면서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풍경도 일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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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F ‘색(色), 생명의 환희’ ‘색(色), 생명의 환희’라는 테마로 채워진 2층에서는 전혁림 선생이 구축한 ‘한국적인 색’의 선명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고유의 정서와 선 그리고 색채를 소재로 한 독특한 색면 구성의 세계를 확립한 전혁림은 우리 시대, 우리의 미의식에 적합한 예술이 가장 현대적인 것이라 주장했다. K현대미술관 2층에서 관객들을 찾아갈 <누드>(2005) 연작 등 작품 50여 점은 단순한 추상적 평면성을 거부하는 전혁림의 강렬하면서도 발랄한 색채와 활동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그림으로 나눈 대화>(화가 전혁림에게 띄우는 아들의 편지)는 전혁림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흔이 훌쩍 넘어 낳은 늦둥이 아들 전영근 화백이 아버지와의 내밀한 추억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 책이다. “거장의 삶은 물론, 화려한 예술혼이 꽃피었던 통영의 한 시절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출판사 남해의봄날은 소개하고 있다. 추상화에 한국의 전통미를 도입하고, 통영의 아름다운 항구와 바다, 전통 건물을 소재로 고향에 대한 애정을 작품 속에 녹여낸 전혁림. 왜 젊은 작가들은 그에게 영감을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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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 (300 x 600cm, 캔버스에 유채, 2005)

“이른 아침 통영 앞바다에 나가면 물고기를 잡으러 나온 작은 돛배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바다 위에 얽히고설킨 돛배들, 그리고 돛과 돛 사이로 아침 해가 들어와 붉게 물든 바다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통영 아침 바다의 활기와 생명력은 삶의 희망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그림으로 나눈 대화>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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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사이로 보이는 한려수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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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F ‘푸른 바다의 화가, 전혁림’ 3층에서는 이 <통영항>(2006)의 원작이 공개되며, 높이 1.2m, 폭 3.4m의 그림 12점으로 구성된 <코리아 판타지>(1989) 연작 등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 25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바다에 대한 전혁림의 애정은 대작 <통영항>(2005)과 <한려수도의 추상적 풍경>(2005), 그리고 <기둥 사이로 보이는 한려수도>(2005) 등에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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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2005) 연작


▶‘대중 예술’ 표방한 젊은 미술관과 만난 전혁림

압구정로데오역 5번 출구로 나와 학동사거리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면 ‘K Museum of Contemporary Art’라고 빨간 글씨가 적힌 투명유리 외벽의 현대식 빌딩이 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에 전혁림 화백이 그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통영항>(2006)의 원작뿐 아니라 다른 버전인 <한려수도의 추상적 풍경>(2005), <기둥 사이로 보이는 한려수도>(2005) 등 1000호가 넘는 대작들을 직접 볼 수 있다. 3층으로 올라가자 높이 3.5m의 거대 도자기 작품인 <통영 항아리>(2005)가 나타난다. 시선을 압도하는 항아리의 크기도 크기이지만, 그 옆에 서 있는 화려하게 채색된 목조 작업 등은 푸른 바다를 닮은 전혁림 내면의 에너지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엽서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 <누드>(2005) 연작은 ‘통영항’으로만 전혁림 작가를 알아오던 관객들의 머리를 신선하게 자극할 뿐 아니라, 전혁림이 20세기 전반의 문화적 충돌과 혼성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켰는지를 짐작케 한다. 유건우 K현대미술관 학예사는 “독학으로 붓을 잡고 오롯이 지방 화단에 머물며 한국 추상미술을 넓힌 이단아 전혁림을 조명해 한국의 미술 맥을 다시 짚으려고 한다”며, “1세대 작가 한 명만을 조명하는 전시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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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3.5m의 <통영 항아리>(2005)


<님을 위한 바다>전이 열리고 있는 K현대미술관은 뉴욕 현대미술관이나 파리의 팔레드 도쿄처럼 센트럴에 위치한 신생 미술관이다. 1층 로비에서는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사진 촬영도 가능한 카페형 갤러리다. 스카치테이프로 만든 거대한 구조물로 유명한 뉴멘/포 유즈의 ‘테이프 서울’을 시작으로 권오상 작가, 이동기 작가, 그라피티와 베어브릭 전시 등 대중이 환호할 만한 현대미술을 꾸준히 선보여온 K현대미술관의 캐치프레이즈는 ‘즐겁게 노는 미술관’. 김연진 관장이 “우리의 경쟁자는 영화관”이라는 포부를 밝힌 K현대미술관에서 색깔로 생의 노래를 불렀던 1세대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 전혁림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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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Sea In The Blue House : 님을 위한 바다'

-일시 2017년 11월 09일 (목) ~ 2018년 2월 11일(일) 매주 월요일 휴관, 화~토 오전 10시~오후 7시 일요일 오전 10시~오후6시(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권 구매 가능), 매일 오전 10시~오후 12시까지 단체 관람 가능(사전 예약 필수)

-장소 K현대미술관 2F, 3F

-가격 성인 10000원, 중고등학생 8500원, 초등학생 7000원, 미취학 아동 6000원

-작품 <통영항>(2005) 외 100여 점

[글 박찬은 기자 사진 박찬은, K현대미술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08호 (17.12.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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