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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불법시위꾼이 낼 돈' 세금으로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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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 손실 계속된다… 건설사들에 480억 더 물어줄 판]

제주해군기지 공사방해 행위… 정부, 34억 구상권 청구 포기

업체들 손실 國庫로 메울판, '불법도 용인' 나쁜 선례 남겨

정부는 12일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불법·폭력시위로 공사를 지연시켜 국고 손실을 초래한 시민단체 회원과 주민을 상대로 받아내려 했던 34억5000만원(구상금)을 포기했다.

정부는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구상금 청구 소송 취하'를 골자로 하는 법원의 강제 조정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국가 안보나 중요 사업을 불법 시위로 방해한 경우에 대해 면죄부를 준 셈이다. 공무원들은 "정부 결정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떼쓰면 불법도 용인된다'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제주 해군기지 관련 구상금 청구 소송 취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참여했던 건설사들은 불법 시위 등으로 기지 착공이 지연돼 당초 예정보다 14개월 늦은 작년 2월에 기지가 완공되자 해군을 상대로 각각 100억~300억원대의 추가 비용을 청구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삼성물산이 청구한 360억원이다. 해군은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를 통해 이를 275억원으로 조정해 삼성물산에 먼저 지급한 뒤, 이 중 불법 시위 일수 등을 계산해 시위 참가 단체 등에 34억5000만원(구상금)을 물어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 취하 결정으로 시위대는 금전적 면책을 받았고 불법 시위로 낭비된 세금은 메울 길이 사라졌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정부의 소송 포기는 배임 행위로 볼 여지도 있다"고 했다.

더구나 구상금 문제는 이번 건이 전부가 아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는 이번에 문제가 된 삼성물산 외에도 포스코건설, 대림산업 등이 참여했다. 이들 역시 공사 지연에 따른 추가 비용을 해군에 요구하고 있다. 대림산업은 231억2000만원을 요구했고, 2개 공구를 맡았던 삼성물산은 1차에 이어 2차로 130억8000만원을 요구했다. 이번에도 해군은 대한상사중재원을 통해 중재를 시도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이 요구한 121억3000만원에 대해선 중재가 이뤄지지 않아 소송이 진행 중이다. 중재와 소송 결과에 따라 최대 480여억원의 국고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정부의 구상권 포기 결정으로 앞으로도 불법 시위대에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졌다.

정부와 군 당국은 구상금 청구 소송을 취하하는 대가로 불법 시위대의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도 받지 못했다. 변호사와 법률 전문가들은 "법원의 이번 강제 조정안은 일방적으로 피고 측에 유리했다. 정부가 백기 투항했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렇다고 제주 해군기지 앞에서 지금도 계속되는 반대 시위가 중단될지도 불분명하다.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불법 시위자는 형사 처벌이 됐기 때문에 면책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제주도를 찾아 "강정마을에 대한 해군의 구상금 청구 소송은 철회하고 사법처리 대상자는 사면하겠다"고 공약했다. 내년 초 있을 것으로 알려진 사면에 이들이 포함될지 주목된다.

해군과 국방부는 지난 정부 때는 "구상금 청구 소송은 불법 행위의 책임을 묻는 적법 절차"라고 했었다. 그러나 이날은 '정부 입장' 자료를 통해 "갈등 치유와 국민 통합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법원의 조정안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에 따른 결정이니 이들이 어쩌기도 어렵긴 했다. 실제 정부는 입장 자료에서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가 현 정부의 지역 공약인 점을 감안해 법원의 조정 결정을 수용했다"고 했다. 정부도 비판 여론이 일 것을 의식한 듯 "(이날) 결정에 대해 다른 입장과 의견이 있는 분도 계실 것"이라며 "깊이 이해해주시고 너그럽게 받아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법은 형평성이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 어떤 기준으로 불법 시위를 막을 것이냐"며 "강정마을은 봐주고 다른 시위는 강력 처벌한다고 하면 당연히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국가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는 있을 수 있지만, 강정마을은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며 "이번 결정은 이런 갈등이 반복적으로 나올 수 있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사회적 갈등 조정을 너무 즉흥적으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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