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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대통령 공약 따라… 법원은 강제 조정, 정부는 슬그머니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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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구상금 받아낼 의지 있으면 재판하면 되는데 그냥 소송 철회

정부는 12일 "법원의 강제조정을 수용해 제주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 소송을 철회한다"고 했다. 언뜻 보기엔 마치 법원의 강제조정에 따라 정부가 소송을 철회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정부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가 반대 시위로 지연돼 발생한 손해에 대해 시공사에 275억원을 물어줬다. 박근혜 정부는 작년 3월 이 돈 중 34억원을 불법 시위를 벌인 사람들로부터 받아내겠다며 구상권 소송을 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지난 8월 열린 첫 재판에서 정부는 입장을 바꿨다. 정부 측은 "소송 취하를 포함해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지난 10월 두 번째 재판에서는 "(재판이 아닌) 조정을 통해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조정은 민사 재판에서 원고와 피고가 서로 합의해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다. 조정이 성립되면 법원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정부가 구상금을 받으려면 재판을 끝까지 진행해 판결을 받으면 되는데, 먼저 조정으로 사건을 해결하자고 한 것이다.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다. 사실상 정부가 그에 맞춰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열린 조정은 결렬됐다. 정부는 구상금은 언급하지 않고 '(제주 해군기지) 반대 활동 중단' 등을 요구했다. 그런데 오히려 강정마을 측 대리인이 '강정마을 사태에 대한 정부의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조정이 결렬되면 법원은 양측 입장을 조율해 '강제조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소송 당사자들이 안 받으면 그만이다. 원고와 피고 어느 한쪽이라도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하면 강제조정안은 폐기되고 다시 정식 재판이 열리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가 정식 재판을 통해 구상금을 받아낼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강제조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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