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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중회담]14일 찍힐 '사진 한 컷' 文-시진핑 '표정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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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한 접견실.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회담하기로 한 장소였다. 그런데 정상회담에서 일어났다고 믿기 의심스러울 정도의 장면이 이곳에서 연이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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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외면하는 사진을 연출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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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장에 손님인 아베 총리가 먼저 도착한 것부터 이상했다. 중국이 주최하는 다자행사에서 이뤄지는 회담인 만큼 호스트인 시 주석이 먼저 와 기다리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회담장에 일본 국기도 준비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뒤 시 주석이 들어서자 아베 총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악수했다. “만나뵙게 돼 매우 기쁘다”며 길게 인사말을 했다. 그런데 시 주석은 아베 총리가 말하는 동안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더니 통역이 발언을 다 전하기도 전에 카메라를 향해 몸을 틀었다. 카메라 기자들이 셔터를 누르는 동안 아베 총리는 머쓱한 듯한 표정이었고, 시 주석은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더니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시 주석이 이웃 국가 정상을 손님으로 불러놓고 이런 ‘망신’을 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2012년 9월) 이후 중·일 간 역사·영토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다. 하지만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중국은 일본과 관계 개선을 원했고, 이를 위해 이례적으로 4개 조항의 합의문까지 발표하며 갈등을 일단 묻고 넘어가기로 했다.

외교가 소식통은 “이를 두고 중국 내에서는 일본에 양보했다는 여론이 나왔고, 이를 의식해 시 주석이 ‘국내정치용’으로 일부러 아베 총리를 냉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정설”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국빈 방중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중국의 ‘사진 한 컷’ 전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갈등을 매듭짓기 위해 양국이 10·31 한·중 관계 개선 관련 협의 결과를 발표한 뒤 중국 내에선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사진 굴욕’이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도적 결례’는 중국이 자주 쓰는 방법이다. 지난해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당시의 일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공항에 도착해 에어 포스 원에서 내리는데 다른 정상들과의 모습과는 뭔가 달랐다. 활주로로 내려오기 위해 사용하는 계단이었다. 다른 정상들은 모두 중국 측이 준비한 레드카펫이 깔린 계단을 사용했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밟고 내려오는 계단에는 레드 카펫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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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중국 항저우공항.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태운 에어포스원이 도착했지만 밟고 내릴 트랩이 제공되지 않아 오바마 대통령은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내려야 했다. 외국 정상 방문시 레드카펫이 깔린 트랩을 제공하는 의전 관례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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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측은 이에 대해 “이동식 계단 운전자가 영어를 못해 안전수칙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고, 미국 측이 아예 접근을 막았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에어 포스 원의 자체 계단을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푸대접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 외교가에는 지배적이었다.

한인희 건국대 중국연구원장은 “일전에는 중국에서 열린 다자행사 때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기 위해 각국 정상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화제가 된 적도 있다”며 “문 대통령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현장에서 시 주석과 눈을 맞추면서 표정을 읽고 대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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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는 모습.[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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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진 외교’는 1972년 리차드 닉슨 미 대통령의 역사적 방중 때도 중국이 활용한 방법이다.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과 악수하는 사진을 보면 마오 주석은 팔을 완전히 뻗지 않고 팔꿈치를 굽힌 채였다. 외교가 소식통은 “닉슨 대통령이 더 적극적으로 악수를 청하는 느낌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당시 닉슨 도착 대통령이 공항에 도착하는 사진을 보면 환영하는 인원이 적은데, 이 역시 중국 정부가 의도한 것”이라며 “중국은 이런 식의 연출에 능하다”고 귀띔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아직 양국 간에 현안에 대한 이견이 있는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너무 활짝 웃기보다는 차분하면서 담담한 표정을 보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한·중 관계가 완전히 풀린 것이 아닌 만큼 시 주석은 굳은 표정인데 우리 대통령만 웃는 표정으로 사진이 나오면 좋진 않을 것 같다. 중국이 사진으로 대중의 인식을 형성하려고 하니 우리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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