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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자24시] 민간 기업들을 좀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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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외국인들 눈에 한국 회사원은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동료와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한참 잡담하고, 점심은 1시간을 훌쩍 넘기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퇴근은 상사 눈치를 보고 야근하기 일쑤다.

이제 '저녁이 있는 삶'과 '워라밸(work life balance)'이란 말이 유행한다. 퇴근 시간에 맞춰 저절로 PC가 꺼지는 제도가 일부 기업에서 실행 중이다. 업무 시간 이후 카톡 지시를 금하는 제도도 확산될 태세다.

지난주 신세계그룹이 임금을 깎지 않으면서 '주 35시간 근무'를 내년부터 시작한다고 전격 발표한 반향이 크다. 업무 시간이 12.5% 줄어도 임금은 낮추지 않는다. 정부의 모호한 태도와 각종 규제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일자리 창출의 핵심 주체로서 민간 기업 의지를 천명했다. 내부에서 별도 연구조직을 만들고 2년간 고민한 산물이란다. 무엇보다 직원들을 믿고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계열사에 마트와 백화점 등 서비스업이 대부분이라 여직원 비율이 높고, 다양한 연령대가 일하니 가족 중심 문화로의 변화에 대한 공감대도 컸다. 올해부터 남성 육아휴직을 1개월 이상씩 의무화한 롯데그룹도 비슷한 경우다.

매경은 '다시 보자 소프트 잡(soft job)' 기획을 통해 유통을 포함한 서비스업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새로운 직장 문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제시했다. 서비스업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53.8%, 전체 취업자 수의 69.9%를 차지하는 일자리 보고다.

이미 고령화사회를 먼저 겪은 선진국에서는 단순하지만 기본소득의 원천이 되는 이런 일자리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무장한 4차 산업혁명 앞에서 가장 위태롭다는 회의적 시선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를 직접 대면하는 초기 경험은 기업가정신의 최적의 출발점이다.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은 10대 때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현실 경제를 배운다. 고객의 까다로운 요구를 맞추기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면 사업할 때도 기술이 아니라 고객, 시장을 최우선시한다. 평생 사무직으로 일하다 은퇴 후 치킨집을 여는 한국 자영업자보다 성공 가능성도 클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일자리 실험이 민간 기업에서 촉발됐다. 기업이 직원을 믿고 새 변화를 시도하듯 정부도 기업을 좀 믿어보면 좋겠다.

[유통경제부 = 이한나 기자 azur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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