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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휘어지는 화면·5배 빠른 충전… '꿈의 소재' 그래핀, 일상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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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백종범 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




지난달 삼성종합기술원이 리튬이온 배터리의 새로운 소재가 될 수 있는 '그래핀 볼(Graphene Ball)'이라는 물질을 만들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래핀 볼을 쓰면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충전 속도도 5배나 빨라진다고 합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스마트폰·노트북·전기차 등 수많은 곳에 사용되지만 용량을 늘리기 힘들고 충전 속도도 느린 단점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그래핀으로 해결했다는 겁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꿈의 신소재'로 불려온 그래핀은 오랜 연구 끝에 배터리, 반도체, 건축 자재, 자동차 소재 등 각 산업 분야에서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시장 조사업체 지온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3200만달러(약 350억원)에 불과했던 전 세계 그래핀 관련 시장 규모는 향후 7년간 연평균 35%씩 급성장할 전망입니다. 2004년 그래핀을 처음 만들어낸 안드레 가임·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가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을 때 학계에서는 "어디다 쓸지 모르지만 발전 가능성은 무한해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발전 가능성이 이제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얇고 단단한 물질… 물리·화학적 특성 '최강'

그래핀은 연필심 소재인 흑연을 한 겹만 벗겨 낸 얇은 탄소막입니다. 전자현미경으로 살펴보면 탄소 원자가 육각형 모양인 벌집 형태로 넓게 연결된 형태입니다. 가임·노보셀로프 교수는 흑연 덩어리에 셀로판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기를 반복하면서 그래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핀이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것은 물리·화학적 특성이 다른 물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래핀은 두께가 0.2나노미터(1㎚=10억 분의 1m)로 매우 얇아 빛을 98% 정도 통과시킵니다. 그래핀으로 전극과 발광 소자 같은 부품을 만들면 투명한 디스플레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얇으면서도 구조적으로는 아주 안정합니다. 강철보다 100배 단단한 데다 면적의 20%를 늘려도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신축성도 좋습니다. 전선(電線)으로 사용하는 구리보다 100배 더 전기가 잘 흐릅니다. 반도체 재료로 사용하는 실리콘과 비교하면 전자(電子)를 100배나 빠르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핀은 등장과 동시에 당시 각광받던 신소재 '풀러렌(Fullerene·축구공 모양의 탄소 분자)'이나 '탄소 나노튜브(Carbon Nanotube)'를 밀어내고 소재 연구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기업과 과학자들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정도 만들어냈습니다.

어떻게 만드나?… '그래핀 플레이크'와 'CVD 그래핀'

그래핀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그래핀 플레이크(Graphene Flake)'와 'CVD(화학기상증착법) 그래핀' 등 두 종류로 나뉩니다. 만들어내는 방식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분야가 다릅니다. 그래핀 플레이크는 흑연을 강한 산이나 환원제를 이용해 분리하는 방법으로 만듭니다. 쇠구슬로 흑연을 얇게 깨뜨리는 볼-밀링(Ball-Milling) 공정으로도 대량생산이 가능합니다. 그래핀 플레이크는 복합 재료와 방열 소재, 전자파 차폐 인쇄용 잉크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합니다.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중국의 경우 그래핀 플레이크 1㎏을 20만원 정도에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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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D 그래핀 제작법은 홍병희 서울대 교수가 2009년 개발했습니다. 고온에서 메탄 등 탄소를 포함한 기체를 태워서 금속 표면에 탄소만 남기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넓은 면적의 그래핀 한 장을 얻을 수 있는데, 그래핀 플레이크보다 품질이 훨씬 좋습니다. 그 덕분에 CVD 그래핀은 디스플레이와 투명 전극,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소재로 활용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CVD 그래핀을 가장 먼저 개발한 데다 기술적으로도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습니다.

현재 그래핀 활용은 그래핀 플레이크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래핀을 섞어 건축 자재를 만들면 기존 건축물보다 튼튼하고 화재에도 안전한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또 그래핀 플레이크로 만든 잉크나 페인트를 이용하면 금속을 코팅해 금속의 산화를 막고 전기전도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기존 금속 코팅재는 전기전도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데, 그래핀 플레이크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에너지 전극과 열·전자파 차폐 소재 등에서도 그래핀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종합기술원에서 발표한 '그래핀 볼'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핀은 열·전기적 성질이 뛰어나므로 자동차 전기 부품 등을 보호하는 차폐막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현재 사용하는 알루미늄 차폐막보다 성능과 내구성이 뛰어난 그래핀 차폐막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고품질 CVD 그래핀의 경우에는 대량으로 싸게 생산하는 기술이 아직 개발 중입니다. 비싸더라도 특성이 워낙 좋기 때문에 일부 활용되는 분야도 있습니다. OLED(유기발광 다이오드) 디스플레이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수분과 산소를 유지해주는 방지막이 바로 CVD 그래핀으로 만든 것입니다.

정부 주도로 그래핀 산업 육성에 나선 '중국'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그래핀 연구와 상용화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래핀 소재 부품 상용화 기술 개발 사업'에 2100억원을 지원하고 있고, EU도 10년간 그래핀 상용화 연구를 하는 기업과 연구소에 10억유로(약 1조2800억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맨체스터대학에 6000만파운드를 투자해 그래핀 연구센터를 개설했고, 싱가포르도 5년간 1000억원 규모의 그래핀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것은 의외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흑연이 가장 풍부한 나라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2015년 기준 중국의 흑연 생산량은 연간 86억t으로 압도적인 세계 1위입니다. 전 세계 흑연 생산량의 67.7%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그래핀의 원료가 풍부하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는 발 빠르게 그래핀 플레이크 생산 등에 투자했고 기업을 육성했습니다. 그 결과 2016년 기준으로 중국의 그래핀 업체는 400개가 넘습니다. 전 세계 그래핀 업체의 75%를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중국 기업들은 그래핀의 생산과 가공뿐 아니라 그래핀을 활용한 건축 자재나 옷감, 배터리 소재 등 다양한 제품까지 생산하고 있습니다.

한국 과학자와 기업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CVD 그래핀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 세계의 관심사인 차세대 반도체나 전기차 배터리 등에서 그래핀을 이용한 원천 기술을 개발한다면 신소재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종범 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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