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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2500만원→1400만원 널뛴 비트코인…정부 규제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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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과열, 유사수신 피해 눈덩이

‘제2 바다이야기’ 우려에 규제설

주요국 ‘산업 싹 자를라’ 지켜보기

업계 “디지털 월스트리트 될 기회”

‘투기시장 변질은 막아야’ 공감대

중앙일보

정부의 암호화폐 거래 규제 도입 소식에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했다. 이틀 새 비트코인 가격은 44%나 떨어졌다. 10일 한 시민이 서울 중구 무교동의 암호화폐 거래소 시세판을 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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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버블이 터졌다.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지난 8일 2499만원까지 폭등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10일엔 1391만1000원까지 밀렸다. 이틀 새 44% 폭락했다.

버블 붕괴의 방아쇠는 한국 정부가 당겼다.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8일 법무부가 ‘암호화폐 거래 금지를 검토한다’는 설이 전해져서다.

투자에 나선 이들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비트코인 광풍에 한 발이라도 먼저 올라타려던 이들이 반대로 먼저 뛰어내리려고 물량을 내던졌다. ‘패닉 셀(panic sell)’이 나왔다.

법무부는 비트코인 광풍이 자칫 ‘제2의 바다이야기’ 사태를 재연할까 우려한다. 바다이야기는 2004년 12월 당시 게임물 규제를 맡았던 영상물 등급위원회에서 ‘18세 이용가’ 판정을 받고 시중에 ‘합법적으로’ 선을 보였다. 그러나 그 사행성과 중독성의 폐해가 심각했다.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일부는 목숨까지 끊었다. 정부는 2006년 뒤늦게 관련 규제 법안을 만들었다. 피해자가 양산되고 난 뒤 취해진 정부의 액션에 “서민 정부라더니 서민 주머니를 털어갔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암호화폐와 관련한 피해는 많다. 금융감독원이 2015년부터 지난 8월까지 암호화폐를 빙자한 유사수신 혐의로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한 건수만 56건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서울 강남 일대 빌딩 중에는 건물 전체가 다 암호화폐 다단계 사기 업체인 곳이 있을 정도”라며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니깐 ‘비트코인과 비슷한 OO코인에 투자하라며 주로 사정에 어두운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유사수신=악’으로 규정하고 나니 해외에서는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상품조차 국내에선 살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미국 시장에서 출시되는 비트코인 선물을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규제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거래소 영업을 금지하려면 근거 법이 있어야 하는데 법안을 마련해 국회 통과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 전면 금지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비트코인 가격 상승세를 꺾지 못했다.

그건 비트코인의 특성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기저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것으로 평가되는 기술이다. 또 국경 간 경계가 있는 법정화폐(fiat currency)와는 달리 비트코인은 장벽이 없다. 한 국가가 거래를 막으면 다른 나라의 거래소를 이용하면 된다. 국내 거래소 문을 닫아도 해외 거래소를 통해 투자가 가능하다.

해외에서는 대체로 섣부른 규제가 산업 발전의 싹을 자를 수 있으니 일단은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다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투기 위험성에 대해서는 꾸준히 경고한다.

미국은 원칙이 분명하다. 암호호폐가 무엇이건 간에 자금세탁에 이용되는 건 철저히 막겠다는 의지다. 금융위 관계자는 “미국 뉴욕주가 암호화폐 거래소를 인가했다고 하지만 자금 추적 기술이 지원되는 암호화폐에 대해서만 거래를 허가하고 나머지는 아예 거래를 금지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암호화폐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다. 지난 4월 자금결제법을 통과시켜 비트코인을 공식적인 지급 결제 수단으로 인정했다. 다만 투자자 보호는 엄격하다. 암호화폐 거래소 인가제를 통해 증권회사 수준의 투자자 보호장치가 마련된 11곳에만 영업을 허가해 줬다.

스타트업 전문 투자기업인 스파크랩스의 김호민 대표는 “한국이 향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중심, 곧 비유하자면 ‘디지털 월스트리트’가 될 수 있는데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규제책을 검토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창기 블록체인OS 대표는 “네이버ㆍ엔씨소프트ㆍ넥슨 등과 같은 기업들이 90년말 IT버블기에 태동했지만 지난번 아이폰이 촉발한 모바일 혁명 시대 우리 기업들은 어떤 뚜렷한 성과도 내지 못했다”며 “블록체인 혁명 시대 낡은 규제로 또다시 기회를 놓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만 투기장으로 변질된 암호화폐 시장을 어떤 식으로든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건 업계에서도 공감한다.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거래 때 연령이나 투자 금액 제한을 두거나, 불법 거래에 암호화폐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자금세탁 방지나 실명 확인이 철저한 거래소만 영업을 허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투자자 보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마약 등의 불법 자금으로 의심되는 거래를 방치한 거래소는 은행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하는 식의 자율 규제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세제도 마련도 시급하다. 암호화폐의 법률적 성격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거래를 물물교환으로 보는 독일은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은 암호화폐를 통화로 간주해 부가가치세를 매기지 않는다.

◆암호화폐(cryptocurrency)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블록체인의 암호화 기술을 활용한 화폐다. 법정화폐와 달리 실체가 없다는 의미에서 이전에는 가상화폐(virtual currency)로 불렸다. 한국 정부는 ‘가상통화’로 부른다. 전 세계에서 암호화폐라는 말로 통일되고 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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