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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크레인 올리다가 또 ‘쿵’…희생자는 이번에도 하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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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서 85m 타워크레인 전도 3명 사망·4명 부상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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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타워크레인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한 달이 채 안돼 7명의 사상자를 낸 타워크레인 사고가 또 발생했다. 이번 사고 역시 지난 10월과 5월 각각 5명의 사상자를 낸 의정부·남양주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크레인을 들어올리는 인상작업(telescoping)을 하다가 일어났다. 올해에만 타워크레인 사고로 노동자 17명이 사망했다.

■ 엿가락처럼 휜 크레인

지난 9일 오후 1시10분쯤 경기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신축공사장에서 건물 34층 높이(85m) 타워크레인의 중간 지점(64m)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면서 75m 높이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7명이 추락했다. 이 사고로 김모씨(55) 등 3명이 숨지고 최모씨(43) 등 4명이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10일 오후 2시부터 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용인시청 등과 함께 관계기관 합동감식을 벌였다. 경찰은 타워크레인에 불량 부품이나 장비 불량 등 설비 결함이 있었는지, 사고 당시 현장 안전수칙이 잘 지켜졌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무너진 크레인은 2012년 프랑스에서 제조돼 지난해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업체 관계자가 2012년 제조된 것이라고 진술했으나 서류상 등으로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또 신호수와 작업자 간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고가 났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노동부와 경찰은 이날 타워크레인 붕괴사고 직전 크레인 트롤리가 움직였다는 목격자 진술을 확보했다. 트롤리는 타워크레인의 팔 역할을 하는 가로 방향 지프에 달린 장치로 일종의 도르래다. 인상작업 중에는 트롤리를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경찰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붕괴된 크레인의 단면과 상부의 자재 등을 정밀 감식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는 작업자들이 크레인 13단(1단 5.8m) 지점에서 단을 하나 더 높이기 위한 인상작업을 하던 중 아랫부분인 11~12단(64m 높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인상작업은 크레인을 설치·해체하거나 높이를 조정할 때 진행된다.

지난달 1일 설치공사가 시작돼 6단 높이에서 공사에 투입된 이 크레인은 이날 마지막 인상작업(13~14단) 중이었다. 사고가 난 물류센터는 지하 5층·지상 4층 규모(연면적 5만8000여㎡)로 지난해 9월1일 착공했으며 내년 8월30일 준공 예정이다.

수원과 용인 장례식장에 각각 분산 안치됐던 희생자들은 이날 주거지 인근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이날 의정부의 한 병원으로 옮겨진 김씨는 20년 동안 크레인 설치·해체 작업을 해온 베테랑으로 이직한 지 4일 만에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씨는 최근 일주일가량 현장에 나가지 않다가 지난 5일 직장을 옮겨 이날 사고가 난 용인 물류센터 공사장에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부산 시민장례식장으로 옮겨진 장모씨(49) 유족은 “크레인 작업이 위험하다며 그만두고 조선소에서 일하다 요즘 그쪽 경기가 안 좋아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위험외주화 관련 법 개정해야”

이번 사고는 정부가 지난달 16일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그 대책에 실효성이 없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아직 사고의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앞선 두 사고와 유형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후진국형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 사고 당시 현장소장은 비번이어서 현장에 없었고, 안전차장이 현장 지휘를 하던 중 사고가 난 것으로 확인됐다. 사상자 중 타워크레인 기사는 하청업체 직원이고, 나머지 6명은 재하청업체 직원들이다.

올 들어 발생한 타워크레인 사고 사망 노동자는 17명으로 모두 하청업체 직원들이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원청과 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하청업체의 구조적 문제가 이번 사고에서도 또다시 여실히 드러났다. 최저 입찰제도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위험 속으로 내몰고 있다.

이번 사고의 타워크레인은 5년 전 제조된 것으로 부품의 노후화로 인한 사고 발생 가능성은 적은 편이지만 경찰은 순정 부품을 사용했는지 조사 중이다. 지난 5월 남양주 사고는 수입 순정 부품을 주문하지 않고 철공소에서 제작한 부품을 사용해 일어났다. ‘공기’ 압박이 심한 선분양제도 이 같은 대형 크레인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타워크레인은 높은 곳에 설치돼 있다보니 장비의 상태와 기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만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허술한 점검과 기상 악조건 속에서도 공사가 강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철구조물은 온도 차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기 쉬워 당장이라도 겨울철 설치·해체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종합대책에는 제작된 지 20년이 넘은 타워크레인은 원칙적으로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10년이 도래한 크레인은 주요 부위에 대한 정밀검사를 의무화하고, 15년 이상은 2년마다 비파괴검사 실시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연식 제한 도입에 앞서 정부는 지난달부터 전국의 모든 타워크레인 6074대를 대상으로 허위 연식 등록 여부, 설비 결함, 노후 부품 안전성 등도 점검하고 있다. 전국건설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하도급 관행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며 “종합건설업체 또는 타워크레인 임대업체가 의무적으로 설치·해체 팀을 직고용하도록 관련 법을 신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태영·김상범 기자 kye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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