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소추안은 찬성 234, 반대 56, 기권 2, 무효 7표로 가결 정족수 200표를 훌쩍 넘었다.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아니, 더 새롭고 놀라운 역사는 그 한 달여 전부터 시작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은 광장으로 몰려나와 촛불을 들었고, 결국 헌법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하는 탄핵 절차를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이 탄핵소추 가결 반년 뒤 문재인 대통령 탄생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이었다.
질서 있는 집회로 법치주의에 따라 최고권력자를 파면한 사례는 세계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일종의 명예혁명이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행사는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는 삼권분립의 원칙,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도 국회가 헌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의 정신을 국민은 재확인했다. 권력이 기업을, 정치가 경제를 마음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시장경제 원칙을 확인하며 앞으로 다신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는 데 국민은 공감했다. 이는 촛불과 탄핵 절차를 거쳐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소명(召命)이기도 하다.
새 정부 탄생 7개월이 되는 오늘, 과연 이 정부가 국민의 시대적 요구에 충실했는가를 돌아본다. 민주적이고 소탈한 문 대통령이 전임처럼 청와대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아무도 모르게 권력을 농단할 것이라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제1국정과제인 적폐 청산처럼 대통령이 깃발을 들면 여당이 일제히 지원사격을 하고 정부 각 부처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과거 정권의 일을 헤집는, 그 일사불란(一絲不亂)함이 제왕적 대통령의 또 다른 얼굴은 아닌가. 무엇보다 7개월 동안 나라가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질서와 절제로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가자는 탄핵의 정신에 맞는지 의문이다.
정치가 경제를 쥐고 흔드는 것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권위주의 정권처럼 기업의 오너를 겁박해 움직이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이사제 도입 등으로 시장경제의 저변을 흔들면서 훨씬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가. ‘캠코더’ 인사로 사정·사법기관을 필두로 밭을 갈아엎는 것도 ‘고소영’ ‘수첩’ 인사의 다른 버전은 아닌가. 그 청산과 갈아엎기, 과거와의 싸움에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이 점점 늘고 있다.
이제 눈을 과거에서 미래로, 안에서 밖으로 돌려야 할 때다. 미국 조야(朝野)에서 주한 미국인 소개(疏開)론이 나오는 안보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갈등 증폭에 앞장서선 안 될 일이다. 적폐 청산도 이제는 그간의 작업에서 드러난 결과를 놓고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계속 인적 청산에 집착한다면 결국 이 정부도 정치 보복의 사슬에 얽매일 것이다. 대선 기간 누구보다 ‘대통합’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 아닌가. 아무리 우리가 북쪽의 핵을 가진 깡패 정권과 주변의 키다리 국가에 둘러싸여 불안감에 떨지라도 대통령이 손을 들고 앞장서 헤쳐 나간다면 국민은 믿고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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