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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의 청경우독]6번째 日 제국대학 '경성제대'…불편한 제국대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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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식민지 조선에 일본이 세운 최초 종합대학

- 日 도쿄대 이은 6번째 제국대학
- 근대 엘리트 양성 시스템 구축 목적, 실제론 제국주의 엘리트 인재 양성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국립서울대학교의 전신은 경성제국대학이다. 경성제국대학은 근대화의 전환점이었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다시 대륙침탈의 욕망을 키웠던 일본제국이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 이후 식민지 조선에 세운 첫 종합대학으로 1924년 설립됐다. 일본의 학제를 적용해 일본제국이 원하는 엘리트 관료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었다. 일반적으로 경성제국대학에 대해 아는 수준은 이 정도다.

한 걸음 더 가보자. 경성제국대학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제국이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 이후 식민지에 세운 첫 종합대학이며 이른바 '제국대학령'에 의해 본토에 세워진 제국대학에 이은 여섯 번째 제국대학이었다. 또 다른 식민지 타이베이에 들어선 제국대학은 이보다 4년 뒤인 1928년에 설립됐다. 일본제국은 법문학, 이공학, 의학 3가지 학부를 개설하고 본국의 엘리트 양성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했다. 1945년 8월 대한민국이 광복의 기쁨을 맞이하기 전까지 한반도 유일의 종합대학이기도 했다.

제국대학은 일본인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해 항복을 선언하기 전인 1945년 8월15일까지 일본 본토의 도쿄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 도호쿠제국대학, 큐슈제국대학, 홋카이도제국대학 등 다섯 개 제국대학을 졸업한 조선인의 수는 729명이었다. 일본인 졸업생 수에 비해서는 적지만 조선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조선인 엘리트를 활용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일본의 제국대학 중심의 학제는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전이됐다. 유럽과 미국의 학제를 바탕으로 근대화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체주의에 함몰된 엘리트를 배출했고 그 시스템에 올라탄 학생 개인에게는 큰 고통을 안겼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옛 명문 고등학교의 상당수는 제국대학으로 가는 시스템의 잔재다.

특히 메이지 유신, 다이쇼 시대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쟁을 준비한 쇼와 시대를 거치며 공고해진 제국대학 중심의 엘리트 양성 시스템은 과도한 입시 경쟁을 낳았다. 제국대학과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필수 과정인 관립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만으로도 이후의 삶은 특권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제국은 격렬한 입시 경쟁 안에서 본토와 식민지에서 최고의 인재를 관료로 활용할 수 있었고 경쟁에서 승리한 개인은 그만큼 부와 명예가 따르는 삶을 보장 받을 수 있었으니 그 사이에서 작동하는 구심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일본에서는 일곱 개 제국대학 중에서도 가장 먼저 세워진 도쿄제국대학을 중심으로 매년 입시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입시낭인이라는 의미의 '백선낭인(白線浪人)'이라는 표현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과도한 경쟁으로 시험 부정행위가 빈번해지고 고등학교 과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보다 못한 정부가 각종 개선책을 내놨지만 백약이 무효한 상황은 지속됐다.

일본 본토의 제국대학이 '제국'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폐지한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한 참이 지난 1947년 5월이었다. 광복을 맞은 한국에서는 '조선교육심의회'를 중심으로 이보다 이른 1946년 8월에 국립서울대학교가 개교했다. 연합군 총사령부(GHO)가 전후 일본에 대한 처리를 담당했지만 수십 년 간 누적된 제국대학의 관성을 깨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제국대학제도와 잔재가 형식적으로나마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기는 이보다 더 늦은 1949년에서야 가능했다.

일본인 명예교수 가 쓴 '제국대학' 통사
제국과 대학의 관계 조명 부족…전체주의적 역사관 아쉬워


아마노 이쿠오(天野郁夫) 도쿄대학 명예교수가 쓴 '제국대학(帝國大學)'은 제국대학의 관점에서 이 같은 내용의 근현대 일본의 입시시스템과 대학교육 등에 대한 통사를 서술한 책이다. 일본 내 일곱 개 제국대학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종합대학(university)이 설립되기 시작한 과정과 새로운 학제를 만드는 과정에 있었던 일본 관료들의 고민을 담았다.

저자가 제시한 사료는 흥미로웠던 반면 일본인 중심의 제국대학 통사인 탓에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근대 일본 대학제도의 중심이었고 국가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육성의 핵심장치였다는 저자의 평가에서 식민지 조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곱 개 제국대학의 후신이 일본 내에서 지금도 '구(舊)제대'라고 불리며 강한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하니,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전체적인 분량은 적지만 조선의 교육시스템을 근대화한 것도 일본 내부의 여론 때문이라는 뉘앙스도 풍긴다.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일본이 식민 통치를 하면서 대학 하나 설립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성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여러 외국의 비난과 도쿄제국대학 교수들이 연명으로 "식민지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의 혜택을 입도록 해 융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건조한 서술에서는 저자와 책이 보여주는 세계관의 한계가 보인다.

더욱이 경성제국대학이 조선에 들어선 최초의 종합대학이라고 쳐도 입학자들은 일본인 거주자의 자녀들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이는 조선인과 대만인 대상의 초중등교육이 낮은 수준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는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의아해진다. 책 후반부에서 알게 됐지만, 이 책은 옛 제국대학 출신 모임인 '학사회'가 펴내는 회보에 연재한 것을 엮어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교육제도가 뒤떨어져 있었다는 사대주의에서 파생된 전체주의적 사관이 깊게 배어 있다.

저자의 전문분야는 교육학이다.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 장치였던 제국대학을 파악하려는 의도가 컸다고 하더라도 '학자'라는 지위를 감안하면 불쾌함이 남는다. 매우 완곡하지만 책을 옮긴 박광현ㆍ정종현 교수 역시 "근대 일본제국이라는 국가 체제가 전제된 '제국대학'의 형상에 무관심한 측면이 있다. 아쉬운 점은 국가주의와 대학의 관련을 좀더 깊이 있게 추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한국 대학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역사를 계승하는 일이든 역사를 청산하는 일이든 시간을 거슬러 올라 검증하고 다듬는 최소한의 절차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치열한 토론과 논의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성찰하지 않은 기억은 편린일 뿐 역사적 가치가 없다. '한국 대학의 역사',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부작위(不作爲)'의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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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노 이쿠오 지음/박광현정종현 옮김/산처럼/1만8000원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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