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여간 국제사회 공동의 합의와 여론을 거스른 트럼프의 일방주의 외교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 결정은 그 파장이 다른 사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가 야당 당수 시절이던 2000년 보안요원들을 대동해 유대교와 이슬람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 신전산을 방문해 불거진 제2차 인티파다(봉기) 이후 수천 명의 희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의 기자회견 내용을 봐서는 결정의 논리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국회나 대법원, 총리 관저 소재지”라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사정을 몰라서 세계 각국이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두는 것도, 선거 때 표를 의식해 대사관 이전을 공언한 역대 미 대통령들이 취임 후 이를 유보한 것도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20년 이상 우리는 평화 합의에 한 발도 다가서지 못했다”며 “같은 행동으로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도 했다. 지금까지 정책이 실패했으니 다른 전략을 써야 한다는 취지이나 정작 새로운 정책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지지부진한 평화협상의 가능성이 거의 사라지려는 마당에 어떤 합의가 가능할지 미지수다.
이번 결정을 러시아 게이트 등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지지층 결속을 노리고 내놓은 국내 정치용 선언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트럼프가 갈등의 핵심인 예루살렘 귀속에 대해 “당사자끼리 해결할 문제”라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와 이스라엘이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한 것이나, 실제 대사관 이전까지 수년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 경우 이슬람권의 반발은 제한적이겠지만 결국 지지율 만회를 위해 유혈 사태를 동반할 국제 문제를 이용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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