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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영흥도 낚싯배 전복' 유일한 실종자 가족, "주차장에 차 있는데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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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애타는 기다림

영흥도에서 밤새다 출근
배 인양에 한달음 달려가
아무것도 못찾고 '허망'
선장 추정 시신 1구 발견
남은 실종자는 이씨 1명


아시아경제

4일 밤 영흥도 부두에서 낚싯배 추돌 사고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사진=이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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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인천)=이관주 기자]지난 4일 오후 7시께 초저녁 짙은 어둠이 깔린 영흥도 앞바다 위로 환한 빛이 밝혀졌다. 낚싯배 추돌 사고 실종자 수색을 위해 투하된 조명탄 아래로 커다란 보름달과 국내 최대 규모 석탄화력발전소인 영흥화력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가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 거리, 낚싯배가 출항했던 부두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실종자 이모(57)씨의 가족들은 초조하게 바다만을 응시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내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매서운 바람과 거센 파도로 인해 40여분 만에 수색이 중단됐고, 조명탄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이씨의 아들(28)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주 토요일(2일) 오후였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피땀으로 일군 공장에서 5년 전부터 함께 일하고 있는 아들은 그날도 평범하게 아버지와 퇴근을 함께했다. 일이 바빠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아버지는 모처럼 퇴근길에 거래처 직원과 '번개'를 잡았다. 평소 마음 맞는 사람들과 바다낚시를 즐기던 아버지였다.

다음 날 오전 9시께 아침식사를 하던 아들은 공장 거래처 지인에게 급작스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아버지가 탔던 배에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었다. 경황없이 차를 몰아 처음에는 부상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던 인하대병원으로 갔다. 안전을 먼저 생각하던 아버지는 낚시를 가기 전 집에서부터 구명조끼를 항상 착용하고 나갔다. 별일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병원에 도착해 부상자 명단에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고통 속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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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밤 낚싯배 추돌 사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마련된 영흥도 부두 대기실 주위에 자원봉사자와 경찰들이 활동하고 있다.(사진=이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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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눈으로 영흥도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들은 새벽부터 공장으로 향했다. 중요한 거래가 있었다. 아버지가 일군 신뢰를 무너뜨릴 순 없었다.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일을 처리하던 중 낚싯배가 인양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버지의 신발 한 짝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한달음에 월미도로 달려갔지만 배에서는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들은 "선착장 주차장에 서 있는 차를 보면 아버지가 여기에 분명 오셨다는 건데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게 갑작스럽게 사라진 느낌이다. 여전히 꿈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어느 덧 영흥도에서의 기다림은 사흘째를 맞이했다. 이날 오전 실종자로 추정되는 시신 1구가 인근 해역에서 발견됐으나 또 다른 실종자인 선장 오모(69)씨로 확인되면서 안타까움의 시간은 더욱 길이지는 모습이다. 식사도 제대로 못해 퉁퉁 부은 어머니와 누나의 눈을 보며 아들은 더욱 의연하게 마음을 먹지만, 혼자 있을 때면 울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겨울철에는 일이 없으니 가족여행을 가자고 했던 아버지가 자꾸 눈에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태껏 너무 고생만 하셨다. 일을 하면서 아버지와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근엄하고 자랑스러운 아버지셨다. 이제는 그저 돌아와 주시기만을 바랄뿐"이라는 20대 청년의 얼굴에는 짙은 회한이 묻어나왔다.

한편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던 해경은 5일 오전 영흥도 노가리 해변 인근에서 선장 오모(69)씨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발견했다. 이번 영흥도 낚싯배(선창1호) 전복 사고로 낚싯배에 타고 있던 22명(선원 2명, 승객 20명) 가운데 14명이 숨지고 7명이 구조됐다. 남은 실종자는 이씨 한 명이다.

인천=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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