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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타협하지 않는 욕망의 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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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히데키 연극 '밖으로 나왓!'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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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개막한 연극 '밖으로 나왓!'에는 일본인 가족이 등장한다. 아빠 보는 일본 전통극 '노(能)'에 한평생을 바친 중년 연기자, 엄마 부는 라면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왈가닥 아줌마, 외동딸 피클은 도쿄 하라주쿠 거리에서 흔히 보는 요란한 복장의 소녀. 배우들은 이질적으로 결합하지만 무대는 평범하다.

일본 역사상 가장 부유했다던 쇼와 시대 목조 가옥을 따온 듯한 무대는 여느 일본 드라마에서 본 듯하다. 또한 연극을 시작하기 전 흐르는 엔카는 친숙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각자의 집에 온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막이 오르면 배역들은 묘하게 무대에 녹아들지 않는다. 눈을 씻고 찾으려야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가족, 이들에게 어느 날 불운이 닥친다. 바로 외출 약속이 겹쳐버린 것이다. 만삭인 강아지 프린세스가 오늘내일하고 있어 누군가는 돌봐야 하지만, 누구 하나 남겠다고 양보하는 사람은 없다.

외출 약속은 어찌 보면 시덥지 않다. 아빠는 친구 3명과 놀이동산에 놀러가기로 했고, 엄마는 오매물망 기다리던 아이돌 가수 '보이즈 보이즈 보이즈'의 콘서트에 가려고 한다. 외동딸은 내일 아침 개업하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려면 기다려야 한다면서 한사코 외출하겠다고 한다.

서로 나가겠다고 싸우면서 온 집안은 난리법석이다. 문 앞에 찾아온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인터폰을 뜯고 가족들의 휴대폰은 모두 부숴버린다. 그래도 나가려고 하니 서로 다른 사람의 다리를 쇠사슬로 묶어 버린다.

심지어 쇠사슬을 푸는 열쇠도 화장실 변기에 빠뜨려 버린다. 집안은 어느새 감옥처럼 변한다. 각자 욕심을 조금씩 버리고 양보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비극이 눈앞에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세 사람 모두 옴짝달싹 묶이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발한다. 극 중 이어지는 슬랩스틱 연기는 발군이다.

하지만 '밖으로 나왓!'은 흔하디 흔한 코미디극이 아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촌철살인처럼, 아무 생각 없이 객석에 앉으면 배꼽을 잡지만 연극이 끝나면 씁쓸한 감정이 몰려온다.

이를 두고 연출·각본·배역 1인3역을 맡은 노다 히데키는 "세상은 작은 화면을 보면서 '나! 나! 나!'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마치 세 사람이 각자의 외출 일정을 양보하지 않은 것처럼. 그는 또 "휴대전화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도구지만 사실 자기 얘기만 하는 것"이라며 "가족조차도 점점 존망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밝혔다.

노다 감독은 한국 관객에 친숙한 연출가다. 2005년 '빨간 도깨비', 2013년 '더 비(THE BEE)', 2014년 '반신' 이후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극단 노다·맵을 이끌고 있으며 일본 한국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밖으로 나왓!'은 2010년 일본어로 초연했다. 한국 무대에 선보인 '밖으로 나왓!'은 영어로 다시 만든 버전이다. 26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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