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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Photo&] 匠人의 숨…유리의 生…그리고 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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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유리를 찾아서

매일경제

1200도가 넘는 고열의 가마에서 색유리로 만든 화병이 벌겋게 달궈지고 있다. 대부도 유리섬에 있는 가마가 내뿜는 뜨거운 열기로 작업장 안은 한겨울에도 후끈후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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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한번 '후' 불어넣으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녹아 흘러내리는 유리를 어딘가에 쓰이는 물건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숙련된 장인과 조교가 파이프를 굴려가며 몇 번이고 날숨을 불어넣자 유리 덩어리 크기가 조금씩 커졌다. 파이프 끝에 달린 유리는 몇 번이고 가마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성형 과정에서 유리 표면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면 금이 생기기 때문에 유리가 식지 않도록 연거푸 달궈줘야 한단다. 1시간쯤 지났을까. 작업자들의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고 나서야 흐물거리던 유리는 예쁜 화병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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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 유리섬에서 작가들이 화병 끝에 장식을 더하고 있다.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액체 상태의 유리를 붙이는 과정은 서로의 호흡이 중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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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주노초파남보, 유리로 표현할 수 있는 색은 '무지개 색'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계통의 색이어도 명도와 채도에 따른 미묘한 색 차이까지 표현이 가능하다. 유리의 색은 첨가되는 금속 산화물에 의해 정해진다. 액체 상태의 유리에 금 산화물을 첨가하면 붉은 계통의 유리가, 망간 산화물을 더하면 보라색 계열의 유리가 되는 식이다. 금속물을 첨가하는 것뿐 아니라 투명유리 위에 색유리를 녹여 코팅하는 방법, 투명유리에 유약을 발라 굽는 방법 등 유리에 색을 입히는 방법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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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로에서 갓 꺼낸 액체 상태의 투명유리에 잘게 부순 색유리를 묻혀 색을 입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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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유리는 컵, 화병과 같이 일상에 쓰이는 생활용품의 재료를 넘어 정밀한 공예나 작품의 소재로도 사용된다. 대부도에 위치한 유리섬박물관 공방에는 작가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글라스 블로잉, 램프 워킹, 콜드 워킹과 같은 수많은 색유리 가공 기법만큼이나 다양한 색감, 질감을 자랑하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광택이 나는 매끄러운 표면'이라는 유리의 기존 속성을 깨고 울퉁불퉁하고 거친 질감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러데이션으로 색을 입힌 전시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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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유리는 투과하는 빛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여러 빛을 유리에 투과시켜본 후 도안을 완성한다. 파주 헤이리의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에서 장인이 완성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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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사용되는 색유리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대표적이다.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의 첫 단계는 도안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비슷한 색감의 색유리라도 빛을 받지 않을 때와 태양빛이 투과할 때의 느낌이 각각 다르기에 색유리를 어떤 조합으로 사용할 것인지 수백 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어서 도안을 완성한다. 도안이 완성되면 도안을 따라 색유리를 자른다. 도안과 자른 유리 사이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전체적인 판이 뒤틀릴 수 있기 때문에 오랜 내공을 갖춘 장인들도 유리를 자르는 작업만큼은 '초집중'한다고 한다. 자른 유리는 마치 퍼즐을 맞추듯 납으로 된 틀에 끼어서 하나의 유리판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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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에서 공예가가 다양한 색상의 색유리를 살펴보고 있다. 색상표 색상마다 고유한 번호가 있듯이 색유리에도 각각의 코드가 있다. 색유리를 통해서도 명도와 채도 차이에 따른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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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공방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이 진행 중이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도안을 따라 자른 유리를 조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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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영하의 찬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작업장 내부는 가마의 열기로 오히려 후끈했다. 가을·겨울에는 비교적 참을 만하지만 한여름에는 실내 온도가 40도, 50도를 우습게 넘긴다고 한다. 가마를 잠깐 멈추거나 에어컨을 틀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온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유리의 품질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가마 가동을 멈출 수 없다고 한다. 파이프를 굴리는 숙련된 장인의 손가락과 손목에는 유리에 긁혀 생긴 생채기와 화상 자국이 가득했다. 가마가 내뿜는 열기로 피어오른 아지랑이 뒤편으로 오색의 색유리가 벌건 빛을 내며 피어올랐다.

[글·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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