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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美 "로힝야族 학살은 인종청소"…미얀마 지원 中과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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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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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지역 최대 현안인 미얀마 로힝야족 유혈사태를 둘러싸고 슈퍼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외교전이 다시 불붙었다. 이 지역 '단골 문제'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놓고 격돌해온 미국과 중국이 다시 한번 미얀마 문제로 격돌하고 있다. 중국이 막강한 자금력을 내세워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상황에서 이번 로힝야 사태는 미국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이 로힝야 사태를 '인종청소'로 규정하고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전날 성명을 내고 "철저한 분석을 통해 볼 때 이번 사태를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청소로 간주한다"며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고 수십만 명의 난민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로힝야족 유혈사태를 인종청소로 공식 규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유엔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인종청소의 교과적인 사례'라며 미얀마군의 잔혹 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했을 때 미국은 말을 아꼈다.

틸러슨 장관은 "가능한 한 제재를 포함하고 미국 법에 근거해 책임을 묻겠다"고도 말했다. 그동안 제재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던 데서 강경한 태도로 선회한 것이다.

미국 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미얀마 군부에 대한 표적 제재가 실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 등은 미얀마 군부 지도자를 대상으로 비자 발급 거부, 광물 수입 제한, 국제금융기구 자금 지원 반대 등을 포함한 제재안을 발의했다.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미얀마군의 행위가 국제법에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대량학살(Genocide)'에 해당하는지도 분석하고 있다. 대량학살이란 특정 종교나 종족 집단을 완전히 제거할 목적으로 박해를 가하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코소보의 인종청소 등이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에 보란 듯이 미얀마 군부의 편을 들며 '밀월'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 추진 대상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 등 군부 지도부를 자국으로 초청해 군사 협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미얀마군 대표단은 22일부터 중국 방문길에 올랐다. 방중 기간에 중국 정부와 군 지도자들을 면담하고, 중국군의 훈련시설과 무기 공장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중국은 전매특허인 '수표 외교(Checkbook Diplomacy)'도 펼쳤다. 왕이 외교부장은 미얀마 정부에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한 데 이어 "로힝야족 거주지인 라카인주의 발전을 위해 인프라스트럭처 정비 등 경제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얀마의 민주화가 후퇴할 것을 우려한 미국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처럼 전방위적인 경제제재 대신 군 인사에 한정한 표적 제재 카드를 꺼냈지만 미얀마 정부 입장에선 '돈 보따리'를 풀겠다는 중국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난 6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미얀마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의안 채택도 막아줬다.

이러다 보니 미얀마는 중국이라는 우방이 있으니 '할 테면 해보라'는 분위기다. WSJ는 "미얀마는 미국이 자국을 압박할수록 필연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라며 되레 큰소리를 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핵심 이익이 걸린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일대일로(一帶一路·현대판 실크로드) 구상에서 미얀마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미얀마를 전략적으로 비호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 집권 2기 출범을 계기로 동남아 등에서 미국과 대등한 국제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신형 국제관계'를 선언하며 '분발유위(奮發有爲·분발해 성과를 이뤄낸다)'를 실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최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가장 껄끄러운 문제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아세안 회원국들을 설득하며 당사국들끼리 행동준칙을 정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스로를 "매우 훌륭한 조정자이며 중재자"라고 강조했지만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을 외면했다. 중국이 건설 중인 남중국해 인공섬과 군사 기지화에 대한 얘기도 모두 빠졌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미국의 개입을 경계해온 중국의 뜻대로 된 만큼 중국이 남중국해 외교전에서 미국을 밀어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시아 중시 전략을 펴온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과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동남아 지역에 대한 외교 전략이 불투명해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 미얀마 정부는 최근 방글라데시 정부와 로힝야족 난민 송환 협상에 돌입했지만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사는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지난 8월 말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핍박받는 동족을 지키겠다면서 미얀마 항전을 선포하자 미얀마군이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현재까지 약 60만명의 로힝야족이 미얀마군의 탄압을 피해 국경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NBC는 "난민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최대 100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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