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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뉴스+] "軍 위안부 도입을…" 靑 국민청원 게시판 황당 글 '눈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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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각층 의견 자유 개진 통로 / 특정 집단 공격 … 상식 어긋난 글도 /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 53만명 / 재벌 3세 폭행 가중처벌 조치 등 이슈 즉각 반응 개선 요구 많아 / 취지 살리려면 소통방식 고민을

세계일보

“이건희 회장이 살아 있는지 확인 좀 해주세요.”

직장인 이모(31)씨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방문했다가 이 같은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생겨 게시글 내용을 확인하다가 황당해 잠시 말문이 막혔다. 게시글이 “이 회장의 생사를 알지 못해 주식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생사를 확인해달라”는 취지여서다.

이씨는 “유익한 청원이 많지만 단순한 장난 글이나 부적절한 게시글도 적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되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게시판이 도를 넘는 장난글이나 상식에 반하는 과격한 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각종 사회적 이슈에 함께 의견을 나누고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게시판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효과적인 소통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세계일보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확인한 결과 이날 오후 4시 현재 4만6900여건의 청원글이 게시판에 올라와 있었다.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청원은 2008년 초등학생 여아를 성폭행해 복역 중인 조두순에 대한 재심과 출소 반대 요청이다. 이 청원은 무려 52만9085명이 동의를 표시했다. ‘주취감형’(술 마시면 형벌 감형) 폐지 청원에도 10만678명이 공감했다.

최근 불거진 이슈에 즉각 반응하며 개선을 요구한 청원도 많았다. 귀순 북한 병사 치료 과정에서 부각된 부실한 응급의료시스템을 개선하자는 ‘권역외상센터에 제도·환경·인력 추가 지원’(7만1031명 동의) 청원, 한림대 성심병원의 간호사에 대한 갑질이 알려지며 제기된 ‘간호사 처우 개선’(3만9379명 동의) 청원 등이 대표적이다. 한화그룹 3세의 변호사 폭행 사건이 알려지고 하루 만인 이날 가중처벌을 요구하는 청원도 4건이나 접수됐다.

상당수 청원은 활발한 토론이나 대안 모색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례로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은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범죄자에 대해 다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견과 함께 사회 안전을 위해 흉악범에 대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세계일보

청와대는 30일간 20만명 이상이 동의한 청원에 대해서는 공식 답변을 내놓는다는 원칙에 따라 지난 9월 ‘소년법 개정’ 청원건에 대해 “개정보다는 예방과 교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조국 민정수석)는 입장을 밝혔다. 또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도 준비 중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해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세울 수 있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영향력이 작은 시민단체도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기도 하다”고 호평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일 “현행 법·제도로는 수용이 곤란해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국민 의견을 표출할 곳이 필요하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하지만 상식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하거나 특정 집단을 공격하는 게시글도 적지 않았다. ‘남녀 갈등 해소를 위해 남성과 여성이 성기를 바꿔 이식해야 한다’, ‘김정숙 여사의 혀 내미는 동영상을 보여달라’, ‘국가반역자들을 삼청교육대 같은 기관에 격리시켜달라’는 등의 글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군 위안부를 재창설하자’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고 이후 해당 글 작성자를 처벌해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온라인상에서 소통이라는 특성상 원래 목적보다는 유희적 성격이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며 “제도를 남용하고 파괴하려는 성격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감안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대한 극단적인 공격이나 발언은 일정 부분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갈등을 부추기는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나 공격, 무분별한 혐오 발언에 대해선 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청와대는 비속어나 선정적인 내용이 담긴 글이나 한 사람에 의해 동일한 게시글이 반복적으로 올라올 경우 최초 청원만 남겨두고 삭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모든 글을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관련 부서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비교적 많은 국민이 동의한 사안에 대해선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순·박성준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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