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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빈티지 마을은 어떤 디자인으로 부가가치가 높아졌나 낡은 것에 대한 익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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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해방촌, 이태원, 망원동, 합정동, 서촌, 북촌, 익선동 등의 공통점은? ‘낡은 동네’라는 점이다. 다소 나이 든 사람들이 그런 동네를 향수 어린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해방촌에 가서 제일 많이 만나는 세대는 20대들이다. 도대체 그들이 언제부터 이 낡은 것들을 사랑했단 말인가. 젊은 세대와 빈티지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시티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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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유전자의 조정이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DNA엔 오감이 포함된다. 20대 기준 부모와 조부모 세대에게 익숙했던 풍경이 스며들어 있다는 말이다. 영어로 노스텔지어, 한자어로 향수가 작용하는 것이다. 대체 병원 분만실에서 태어나 아파트로 들어가 성장하고, 멋은 없지만 현대식 건물의 학교와 현대식 상가에 있는 독서실과 학원, 그리고 집만을 오가며 성장한 젊은 세대가 어느날 망원동으로, 해방촌으로 몰려가는 것도 부족해 필름카메라를 구입하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 놓고는 필름값이 비싸다고 투덜거리게 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빈티지는 ‘낡음의 미학’이다. 굳이 유전자를 거론하지 않아도 ‘물건이 주는 묘한 믿음’이 빈티지 디자인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오랜 시간 소멸되지 않고 남아있는 ‘유물’에 무한 신뢰를 보내곤 한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영생을 희구하는 인간의 본성과도 일치한다. 길어봤자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을, 19세기 런던 템즈강변을 밝히던 가로등 밑에서 사진 찍으며 자신의 인생도 그만큼 길어졌다고 고의적 착각 속으로 들어가는 심리이다. 역사 강좌의 환호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해방촌과 망원동이 낡은 모습으로 남게 된 것은 민주적, 환경 친화적 시장과 의회, 또는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서울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뉴타운 같은 개발 사업을 진행해봤자 더 이상 발생할 수요가 없다는 판단도 큰 작용을 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 잡은 방향이 개발보다 ‘재생’이다. 재생이란 본래 모습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상하수도, 안전 확보, 내구성 보강 등, 어떻게 생각해 보면 싹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힘든 작업이다.

빈티지 디자인의 핵심에는 그러므로 기능, 즉 ‘펑셔널리즘(Functionalism)’이 필히 동반되어야 한다. 해방촌과 망원동에 젊은이들이 몰리고 상권이 커지는 핵심적인 이유는 ‘낡음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다. 재생의 의미 그대로, 형태를 살리되 기능을 강화하는 ‘작업’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며, 아이러니하게도 기능의 강화와 디자인의 완성은 빈티지와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모더니즘’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행동에 익숙한 디자인은 당연히 모더니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해방촌과 망원동, 합정동, 북촌, 익선동에서 손님들 줄 세워가며 돈벌이를 하는 가게들은 빈티지의 내용을 모더니즘으로 마무리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앞으로 서울시, 경기도의 오래된 도시들에서 재생산 되는 빈티지는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런 마을들이 디자인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자체적인 논의가 있을 때 마을의 부가가치는 높아질 수 있다. 결국 집값, 임대료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밀어버리는 시대가 끝나고 고치고 다듬고 화장시켜 잘 생긴 마을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를 맞는 이 즈음, 직장인이든 가정 주부든 ‘빈티지’의 완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이다. 당신의 집은, 사무실은 어떠한가.

[글과 사진 이한나(아트만 텍스트씽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05호 (17.11.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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