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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단독] '연명의료 중단' 허용 8년 만에···첫 존엄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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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암환자 심폐소생술 안 받고 숨져

지닌달 연명의료 시범사업 시작 후

연명의료 안 받겠다는 계획서 작성

의료진 "병이 악화돼 자연사한 것"

[단독]연명의료법 적용한 연명의료 중단 존엄사 나왔다
중앙일보

2009년 5월 대법원이 인공호흡기 제거를 판결한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의 병실 모습.이 판결이 연명의료 중단 합법화의 길을 텄다. 이 판결이 나온지 8년만에 합법적 절차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숨진 환자가 처음 나왔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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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시작된 이후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임종한 환자가 처음 나왔다. 지난해 2월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한 이후 법적 절차에 따라 존엄사를 선택한 첫 사례다.

2009년 5월 대법원이 세브란스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판결하면서 연명의료 중단 합법화의 길을 연지 8년 만이다.

21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연명의료결정 시범사업 의료기관에 입원한 한 암 환자가 최근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명의료 중단이란 임종 시기에 접어들었을 때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등의 연명의료를 하지 않는 걸 말한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하게 되면 환자에게 득이 되는 게 아니라 해를 끼치게 된다. 환자가 고통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임종했다"며 "병세가 악화돼 자연사(自然死) 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환자는 의료진에게 연명의료계획서(POLST)를 작성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의사의 설명을 충분히 들은 뒤 서명했다.

이 환자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의 네 가지 연명의료 행위를 모두 받지 않겠다고 체크했고 임종 상황이 되자 본인의 뜻에 따라 연명의료 없이 편하게 임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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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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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가 환자의 뜻을 받들어 네 가지 또는 일부의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문서다.

의사가 환자를 설득해 작성할 수도, 반대로 환자가 의사에게 요청할 수도 있다. 이번에 존엄사(자연사)를 택한 한 환자는 평소 '연명의료가 불필요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증세가 말기에 가까웠지만 의식은 뚜렷했다. 엄밀히 말하면 연명의료 중단이 아니라 유보로 분류된다. 인공호흡기를 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아서다.

연명의료 중단은 환자가 네가지 연명의료 행위를 다 원하지 않을 수도, 이 중 일부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에 의료진은 암환자에게 ▶질병 상태와 치료방법 ▶연명의료 (중단) 시행방법 ▶연명의료계획서 변경·철회 절차 ▶연명의료계획서 작성·등록·보관·통보 절차 ▶호스피스 이용 등을 설명했다.

환자가 먼저 서명하고 의료진이 최종 서명해서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 제출해 보관해왔다. 이 기관은 정부의 위임을 받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다.

지난달 23일 시범사업 이후 20일까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사람은 10명을 넘지 않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1648명이다. 사전의향서는 주로 건강한 사람이 작성했다.

반면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나 임종기 환자가 작성할 수 있어 대상이 제한돼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먼저 설명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환자한테는커녕 가족에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가족은 '환자에게 말기 상황을 알려주면 자살할지 모른다'며 화를 냈다"면서 "현실과 맞지 않아 작성자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시범사업에서 이런 문제가 드러나자 정부와 국회가 법령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다음달 초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말기·임종기 환자뿐만 아니라 수개월 내 임종과정에 들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게 대상자를 넓힌다. 암 진단을 받을 때 작성할 수 있게 된다. 또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 행위에 승압제(혈압을 올리는 약)나 에크모(체외막산소화장치) 등을 추가할 수 있는 근거가 담긴다.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수)은 "연명의료 제도를 계속 홍보하고 법을 일부 보완하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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