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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문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다](7)“가난·불평등 이야기한 아버지 노래는 칠레인들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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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하라의 딸 아만다 인터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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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하라 재단은 칠레 산티아고 ‘브라질 광장’ 인근에 있다. 이곳에서 하라의 딸 아만다 투르네르 하라(52)를 만나기로 했다. 산티아고의 6월 날씨는 11월의 서울과 비슷했다. 쌀쌀한 바깥과 달리 로비는 따뜻했지만 긴장 때문인지 괜히 몸이 떨려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아만다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빅토르 하라의 웃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안내한 사무실 벽에는 1960~70년대 누에바 칸시온 뮤지션들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한국에서도 빅토르 하라의 노래가 번안되어 불린다고 하자 아만다는 기뻐하며 아버지의 앨범과 엽서, 브로치를 건네줬다.

“아버지의 음악은 민중들의 이야기였고, 민중들을 위해 만들어졌어요. 가난과 불평등을 이야기했고 노래로 불의에 저항했지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경험하고 느꼈던 모든 일들이 노래가 됐기 때문에 많은 칠레인들은 아버지의 노래를 자신의 노래라고 생각해요.”

1932년 산티아고 부근 농촌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빅토르 하라는 어머니 아만다에게서 민중의 노래와 기타를 배웠다. 그가 어머니를 추모하며 만든 노래 ‘아만다, 당신을 기억해요’는 지금도 누에바 칸시온의 대표적인 노래로 불린다. 하라는 칠레대학 연극학과에 입학한 뒤 민요연구 그룹에 들어가면서 누에바 칸시온에 참여했다. 기타를 저항과 사회변혁의 무기로 삼았던 그는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끌던 인민연합 정권 탄생에 기여했고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쳤다. 자연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그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쿠데타 직후 그는 체포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벤세레모스’(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며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던 그의 시신은 처참했다. 혹독한 고문으로 손가락이 짓뭉개져 있었고 양 손목은 부러져 있었다. 기타를 치던 그에게서 음악을 빼앗으려던 독재 정권의 비루한 앙갚음이었다.

“그때 제가 여덟살이었어요. 어렸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기억해요. 아버지는 더 이상 돌아오시지 못했고 제게 노래도 불러주지 못했어요. 미국이 지원했던 군부에 의해 살해당하셨으니까요.”

빅토르 하라의 부인인 영국 출신 무용가 조안 하라는 1983년 <끝나지 않은 노래>를 통해 하라의 삶과 독재 정권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했다. 이 책에는 하라와 딸들의 추억도 실려 있다. 하라는 마누엘라와 아만다, 두 딸의 기저귀를 손수 갈았고 틈이 날 때마다 노래를 불러줬다고 한다.

“군부 정권은 아버지의 음악을 지우려 애썼어요. 지금 젊은 사람들 중에는 아버지의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꽤 있어요. 그래도 젊은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아버지의 음악을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살아나고 있어요. 음악으로 진실의 빛을 밝히고 정의를 되찾으려는 그들의 예술혼에 아버지의 정신이,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안 하라는 1993년 빅토르 하라 재단을 세웠다. 아만다는 “재단에서는 아버지의 정신에 따라서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아버지와 관련된 자료들도 더 모아야 하고 아버지가 잊히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요. 아버지가 고통받고 돌아가셨던 스타디움 내에 공간을 마련해 아버지의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현재의 목표입니다.”

빅토르 하라와 수백명의 지식인들이 잡혀가 최후를 맞았던 칠레스타디움의 현재 이름은 빅토르 하라 스타디움이다. 지난해 6월 미국 플로리다 법원 배심원단은 빅토르 하라 살해에 가담한 전 칠레군 장교 페드로 파블로 바리엔토스에 대해 납치·살해 혐의를 인정해, 유족에게 2800만달러(약 33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바리엔토스는 1989년 미국으로 이주해 현재 플로리다주에 거주하고 있다.

“43년을 기다린 끝에 얻은 열매지요.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요. 칠레에선 아직도 사법적 단죄가 이뤄지지 않았거든요.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이 너무나 더디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진실이 승리할 것이라 믿어요.”

<글·사진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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