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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사기업에 맡겨진 4차산업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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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요즘같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실패한 실험으로 판명된 사회주의에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기 때문일 테다.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낮은 생산력이었다. 생산력이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게 마르크스의 주장이었는데, 정작 혁명은 후진 농업국가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혁명 이후 소련이 시행한 신경제 정책은 1960~7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과 유사한 국가 주도의 적색개발 전략에 다름 아니었다.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소련의 생산력이 너무 취약했다.

경향신문

뜬금없이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소위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이끌고 있는 생산성 혁신을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요즘 글로벌 증시는 4차 산업혁명의 총아들이 장악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이 세계 시가총액 1~5위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가 6~7위에 올라있다.

이들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혁신은 광고와 유통, 물류, 미디어 등 기존 산업의 경쟁 구도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국가 차원의 의제였던 우주 탐사에도 나서고 있고, 인공지능의 개발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힘은 사물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연결의 증대와 이 과정에서 쌓이는 막대한 데이터를 장악하고 있는 데서 나온다.

지식과 정보의 축적은 인간이 행하는 노동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햄버거 체인점도 지식 축적의 산물이다. 햄버거 매장 주방에는 대단한 요리사가 근무하는 게 아니다. 철저하게 매뉴얼화된 조리 단계에 따라 패티가 구워지고, 야채가 빵 사이에 끼워진다. 최대한 계산되고 단순화된 공정을 통해 몇 천원만 내면 균등한 맛을 내는 햄버거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의 역할은 최소화되고, 일을 통한 노하우의 축적도 기대하기 어렵다. 햄버거가 만들어지는 공정에는 임금이 싼 비정규직이 더 적합하다. 노동이 제값을 받기 힘든 구조이다.

주식 한 주 가격이 1000달러를 돌파한 아마존이 혁신 기업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지만, 미국 유통업체들의 몰락은 아마존 성장의 그림자이다. 기록적인 강세장이 이어지고 있는 미국 증시에서도 유통주들의 부진은 매우 뚜렷하다. 물론 기술의 진보가 특정 경제주체의 몰락을 가져오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공포는 인공지능에서 나오고 있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분야가 잠식당하고 있다는 직관적인 공포감이 생겨나고 있다. 장래에 유망한 직업과 별 볼일 없어질 직업에 대한 보도가 종종 나오지만, 대체로 방점은 쇠락할 직업들에 찍히고 있다. 장삼이사뿐만 아니라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인공지능의 세상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기술의 진보가 사람들에게 실존적인 두려움을 야기시키고 있지만, 여기서 파생되는 과실은 특정 기업의 주주들에게 전적으로 귀속되고 있다. 투자의 관점에서는 구글에 투자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구글의 주주가 되면 내 일자리가 위협받는 데서 오는 위험을 헤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들 혁신 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강화 여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이슈이다. 구글 주도의 자율주행차가 나온다고 하는데, 사기업의 알고리즘에 교통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게 온당한 일일까? 국가가 구글보다 더 잘할 것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이를 온전한 사적 영역에 맡기는 것도 찜찜한 일이다.

구글은 전 세계 광고시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인공지능에도 투자하고, 자율주행차에도 투자한다. 구글의 광고가 인기있는 이유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정보를 구글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가 검색한 단어, 다녀간 사이트는 나의 관심사와 취향을 표준화시켜 주고, 구글은 이를 이용해 광고주들에게 맞춤형 광고를 판매한다. 우리는 구글을 이용함으로써 무료로 검색을 하고 동영상을 볼 수 있지만, 한편 구글에 돈벌이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구글이 얻는 막대한 이익과 우리가 구글을 이용함으로써 얻는 편익이 등가인지는 따져볼 만한 주제이다.

구글로 대표되는 혁신 기업이 우리 시대의 빅브러더가 되어 갈수록 역설적으로 공적 규제 논의는 더 활성화될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운명이 사기업에 전적으로 맡겨지는 것은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후진국 러시아가 아니라 사유재산에 대한 보호가 철저하고 생산력이 극적으로 발달한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 기술의 공적 통제가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의 과잉만은 아닐 것이다.

<김학균 | 미래에셋대우 투자전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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