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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72시간 살아남아라" 도쿄에서 진도7 지진 발생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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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수도권 30년 내 직하지진 발생 가능성 70%

구조인력 도착하기 전 72시간 생존법 체험기

엘레베이터 최대 1만7400명 갇혀, 휴대용 변기 소지해야

2주 뒤엔 피난민 720만명... 수도권 인구 4분의 1 해당

일본 정부는 도쿄 수도권에서 30년 내에 70%의 확률로 직하(直下)지진 즉, 지반이 상하로 움직여 발생하는 지진이 예측된다고 경고한다. 고층빌딩이 밀집해 있는 도쿄 지역은 대규모 인명피해가 예상된다. 도쿄에서 대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진 이후 피난생활은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지난 17일 도쿄 고토구(江東?) ‘도쿄 린카이 광역 방재공원’ 내 ‘재해방지체험 학습시설’에서 간접 체험을 해봤다. 진도 7, 규모 7.3의 지진으로 교통과 통신이 두절될 경우 구조대의 손길이 닿기 전 72시간 동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학습하는 곳이다.

중앙일보

도쿄 린카이 광역방재공원 내에 있는 재해방지체험학습시설 '소나 에리어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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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커덩’

10층에서 탄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췄다. 몸을 가누기 힘든 정도로 바닥이 흔들리더니 이내 불이 꺼졌다. “지금 큰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여진이 예상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체험시설이니 긴장할 것 없어"라고 되뇌었지만 솔직히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도쿄 방재당국의 계산으론 지진 발생시 최대 1만7400명이 엘리베이터에 갇힐 수 있다. 낮 12시 직장인들의 움직임이 가장 많은 시간대를 가정했을 경우다. 우선 취해야 하는 방법은 모든 버튼을 눌러 가장 가까운 층에서 일단 내리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 구조인력이 올 때까지 3일 이상 기다리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휴대전화의 예비용 배터리, 간이 화장실로 사용할 수 있는 검은색 비닐이나 페트병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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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7의 직하지진이 발생했을 때를 가정해 시가지를 재현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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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7의 직하지진이 발생했을 때를 가정해 시가지를 재현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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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관은 각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은지 퀴즈를 푸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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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XXX년 12월 X일, 오후 6시. 날씨 춥고 어두워 가장 피해가 큰 시간대를 가정한 상황이다. 도로는 다 부서지고 곳곳에 자동차가 버려져 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자동차를 타고 피난할 생각을 해선 안된다. 타고있던 자동차도 서서히 속도를 줄인 뒤 차 키를 꽂아놓은 채로 나와야 한다.

머리 위에선 고층건물의 잔해와 유리 조각이 시속 35㎞의 속도로 떨어진다. 되도록 건물에서 떨어져 도로 한가운데서 걷는 게 그나마 안전하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도중에 지진이 왔더라도 재빨리 몸을 숨겨야 한다. 동전을 회수하거나 음료수를 뽑는데 10초도 안걸리지만 실제 상황에선 큰 차이다. 자판기가 넘어질 수도 있고, 에어컨 실외기, 간판, 전신주 등 머리 위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카페나 식당 등 실내에 있을 때 지진이 발생했다면 일단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겨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오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피난장소안내 표지판을 따라 지정 피난장소인 ‘중앙 공원’에 도착했다. 일본 방재당국이 추정하는 피난자 수는 지진 발생 1일 약 300만명에서 14일 뒤엔 720만명으로 늘어난다. 당장 집에 돌아갈 수 없는 ‘귀택 곤란자수’는 약 800만명으로 예상된다. 전체 수도권(도쿄, 가나가와, 사이타마, 치바) 인구 약 3000만명 가운데 4분의 1이 임시피난소에 몸을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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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쓰레기로 버려졌던 페트병을 이어붙여 의자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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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소에서 임시로 사용하는 변기. 용변을 담은 검은 비닐은 각자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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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큰 불편은 화장실이다. 하수도가 역류할 수 있기 때문에 변기의 물을 내려선 안된다. 비닐을 이용해 간이 화장실을 만들거나, 검은 비닐을 망토처럼 뒤집어 쓰고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봐야 한다. 각자 용변은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다시 가져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도로가 끊겨 쓰레기 수거차량이 최소 2주동안 다닐 수 없다.

평소엔 쓰레기로 버려졌던 것들이 비상시에는 요긴하게 쓰인다. 페트병을 여러 개 이어붙이면 의자가 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찬 바닥에 앉으면 안되는 임산부를 위해 쓸 수 있다. 마트에서 주는 손잡이 달린 비닐봉지는 임시 삼각붕대가 되고, 신문지는 공처럼 뭉쳐서 비닐에 넣으면 화장실 변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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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소 임시거처는 한 사람이 몸을 간신히 누일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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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로 만든 임시거처는 사생활 보호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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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피난소는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눕힐 수 있는 정도로 좁은 공간이 제공된다. 박스를 접어 옷장 서랍처럼 사용하고, 생활용품을 담은 비닐을 곳곳에 매달아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 피난소 한 켠엔 휴대전화 충전을 기다리는 줄을 서야 한다.

피난소 생활이 길어지면 사생활 보호가 전혀 안되는 것도 문제다. 박스 소재로 칸막이를 만들어 생활하지만 위에서는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 보인다. 나의 사생활도 문제지만 원치 않게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도 스트레스다. 도쿄 방재당국 계산으로는 지진 발생 30일이 지나도 여전히 400만명 이상이 피난소 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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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에서 발간한 도쿄방재 책자. 각 가정, 회사 등에 무료로 배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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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츄오구(中央區)에서 발간한 방재 안내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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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몇년전부터 수도권 지역 직하지진 발생가능성을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다. 집집마다 방재 책자를 배포하고, 체험시설을 마련해 언제든지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키고, 철저한 대비를 당부하고 있다.

“내가 살고있는 동네가 어떤 피해를 입게 될 지,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미리 체험해봄으로서 각자 어떤 대비가 가능한지 점검해보는 것”(사와 요시히로 방재사) 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도쿄도가 발간한 ‘도쿄방재’ 책자에선 가족회의를 열어 피난경로와 피난장소를 점검하고 실제 예행연습까지 해볼 것을 권고한다. 자연재해는 예측불가, 사전 예고 없이 온다. 철저한 대비만이 유일한 대처법이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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