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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신인감독의 패기가 아쉬운 영화 ‘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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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빈·유지태 주연…‘조희팔 사기 사건’ 그대로 차용

반전에 또 반전…후반엔 연쇄 반전이 주는 피로감

권선징악 명쾌하지만 신인답지 않은 클리셰 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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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꾼>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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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 또는 어떤 일에 능숙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대표 용례: 사기꾼(표준국어대사전).

22일 개봉하는 영화 <꾼>은 사기꾼, 그 가운데서도 금융 전문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기꾼 잡는 사기꾼’이라는 홍보문구가 보여주듯 흔한 사기꾼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표방한다. ‘사기꾼 잡는 사기꾼’ 콘셉트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국 범죄오락 영화의 고전이 된 <범죄의 재구성>(2004)은 ‘뛰는 사기꾼 위의 나는 사기꾼’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결국 영화 <꾼>은 그 출발부터 소재와 구성의 기시감을 넘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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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꾼>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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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피라미드 사기 사건인 ‘조희팔 사건’의 얼개를 그대로 차용한다. 이름만 ‘장두칠’로 바꿨을 뿐이다.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 3만여명의 돈 4조원을 가로챈 장두칠 일당. 십여명이 목숨을 끊었지만, 장두칠은 유유히 법망을 뚫고 해외로 도피한다. 8년 뒤 장두칠 사망 소식이 전해지지만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안 잡는 것’이라는, 비호세력에 대한 의혹과 함께 그가 살아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황지성(현빈)은 8년 전 장두칠 사건에 연관해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좇는 지성은 이후 사기꾼만 골라 등치는 사기꾼으로 이름을 날린다. 한편 장두칠 담당 검사 박희수(유지태)는 장두칠의 행적을 좇다 지성과 마주하고, ‘장두칠 검거’라는 공통 목표 아래 둘은 손을 잡는다. 여기에 박 검사의 비공식 수사라인 고석동(배성우), 춘자(나나), 김 과장(안세하) 등 ‘사기꾼 3인방’이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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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꾼>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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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진짜 패’를 숨긴 채 서로 협조하고 때론 이용하는 박희수와 황지성의 두뇌플레이에 집중한다. 여기에 ‘사기꾼 3인방’이 때로는 박희수의 편인 것처럼, 때로는 황지성의 편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관객을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속고 속이고 물고 물리는 플롯은 어느 정도까지는 몰입감을 유지한다. 하지만 반복된 ‘연쇄 반전’은 피로감의 원인이 된다. 어느 시점엔 반전을 위한 반전, 꿰맞춘 반전이라는 느낌이 더 든다.

막강한 조연 군단도 캐릭터의 진부함으로 위력이 반감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인계로만 소모되는 ‘춘자’ 캐릭터가 특히 아쉽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처럼 범죄의 속성 안에 인생의 아이러니한 진실을 섞어 넣는, ‘찰진 대사 한 줄의 미덕’이 아쉽다.

영화는 우직하게 ‘권선징악’을 향해 질주한다. 물론 돈 있고 빽 있는 놈들이 쳐 놓은 거미줄에 걸려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이, 더 정교한 거미줄로 상대를 옭아매 응징한다는 쾌감도 단순하지만 꽤 강렬하다. 하지만 장창원은 신인 감독이다. 영화판을 너무 잘 알아서든 잘 몰라서든, 이 영화엔 신인의 패기나 재기발랄함 대신 클리셰가 넘쳐난다. 그 점이 못내 아쉽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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