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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세상읽기]촛불혁명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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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6년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3대 반란이 일어난 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선거의 해인 2016년에 힘은 약하나 수는 많은 소시민들이 ‘종이 돌’(투표지)을 던져 영국, 미국, 한국에서 기득권들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2016년 영국인들은 브렉시트에 표를 던져 경제적 불평등과 아랍, 터키, 동구에서 온 이주자들로 인해 대량으로 일자리를 빼앗긴 데 대한 분노를 표시하였고, 미국인들은 반이주민주의, 우파 기독교주의, 경제적 보호주의와 정치적 고립주의를 내건 트럼프를 당선시켜 반세계화적인 트럼피즘을 선택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 정권에 의한 민주주의의 후퇴가 일어났고, 박근혜 정권하에서 정점에 도달하였다. 박근혜 정권은 보나파르티즘, 가산주의, 전근대적 주술주의로 퇴보하였고, 그 결과 민주주의는 허울만 남았으며, 구권위주의로의 회귀가 시도되었다. 이에 분노한 수백만의 촛불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작은 자들의 큰 함성’을 질러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킨 촛불혁명을 일으켰다. 촛불혁명은 4·19학생혁명, 6월 민주혁명에 이어 일어난 제3차 시민혁명이다. 촛불혁명은 4·19혁명과 6월 민주혁명에 비해 진화된 시민혁명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소셜미디어, 모바일, 빅데이터와 같은 온라인 소통기구를 통해 연인원 17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오프라인 광장에 모여 ‘동시에 큰 함성을 질러’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였고, 대의기구인 국회에 박 대통령 탄핵소추를 하도록 명령하였고,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소추 결정을 인용하도록 압박하였다.

4·19와 6월항쟁이 돌멩이, 화염병과 총알, 최루탄이 맞부딪치는 거리에서의 폭력적 대결을 통해 이루어진 데 반해, 촛불혁명은 시민들이 ‘거리의 의회’를 열어 박근혜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토론하여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였고, 화염병과 돌멩이가 아니라 ‘종이 돌’을 던져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4·19와 6월항쟁이 수백명이 피를 흘린 유혈적 희생 위에 이루어진 반면, 촛불혁명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달성한 21세기의 ‘명예혁명’이다. 말하자면, 촛불혁명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광장 민주주의와 의회 민주주의, 소셜미디어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를 결합한 헤테라키(heterarchy·복합) 민주주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브렉시트와 트럼피즘이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포퓰리즘으로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촛불혁명은 헤테라키 민주주의 방식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외국 언론들도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촛불혁명을 완성하기 위해서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첫째,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헤겔이 예나에 입성하는 나폴레옹을 보면서 “저기 마상에 시대정신이 지나가고 있다”고 했을 때, 헤겔은 황제 나폴레옹을 칭송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의 시대정신을 전 유럽에 전파하고 있는 ‘나폴레옹 이념’을 찬양한 것이다.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은 자유, 평등, 그리고 정의와 공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국민이 선택한 ‘역사의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촛불정신을 성공적으로 구현하라고 자신을 선택해준 시민 주권자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둘째,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를 구현해야 한다. 과거 정권과 기득권이 저지른 인권유린과 침해, 법치의 훼손을 조사하여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에 의거하여 인적, 물적인 책임을 묻고 희생자에게 보상하고 상처를 치유해 줌으로써 한 줌밖에 안되는 적폐세력을 제외한 절대다수 국민의 대통합을 실현해야 한다. 물론 전환기 정의 세우기에 반대하는 반동세력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 때도 서남 프랑스의 방데 지역에서 농민반란사건이 있었고 혁명군에 의해 장기간에 걸쳐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촛불혁명의 적폐청산은 무력이 아니라, 진실을 밝혀 국민통합을 이룩한다는 전환기 정의 세우기 방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정의를 세우는 자들은 항상 자신을 바로잡고, 근신하는 신독(愼獨)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정의 세우기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될 것이다.

셋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양극화를 해소하고, 서민의 소득을 증대시켜 중산층이 두터운 다이아몬드형 사회인구구조를 만들어 ‘곳간에서 인심 나는’ 물질적 기반인 튼튼한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정의와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전근대적 잔재인 특권주의, 가산제적 세습주의, 인치주의, 연고주의를 철폐해야 한다. 기업, 노동, 공공, 교육, 종교, 언론 부문에서 불공정행위와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공권력의 사유화, 정치의 미디어화와 정치의 사법화를 통해 ‘약탈국가’를 구조화하고 제도화해온 관행과 행태를 뿌리 뽑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외적인 과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이다. 문재인 정부는 인종주의, 종족주의, 종교적 근본주의적인 브렉시트와 트럼피즘과는 달리, 촛불정신에 맞게 포용주의, 관용주의, 평화주의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촛불혁명은 영원한 미완의 혁명이 될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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