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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사설]두 명의 국정원장 구속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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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에 대해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은 국정원장 재임 중 매월 5000만~1억원씩 총 40억원가량의 특수활동비를 박 전 대통령에게 제공해 국고에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그는 영장실질심사에서 “대통령이 직접 국정원 자금을 요구했다”고 자백한 점이 감안됐을 거라고 한다. 영장 기각이 무혐의를 뜻하는 게 아니란 얘기다. 검찰의 영장 재청구나 최소한 불구속 기소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한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3명 전원이 사법처리되기는 사상 처음이다. 이명박 정부 때의 원세훈 전 원장까지 포함하면 연속 4명이다. 국가 최고정보기관 수장들의 몰락을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댓글부대 운영과 선거개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간첩 사건 조작 등 국정원이 저지른 정치공작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도 모자라 시민 세금인 국정원 예산을 쌈짓돈처럼 꺼내 마치 조폭이 보스에게 상납하듯이 청와대에 다달이 보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수구보수언론과 야당이 ‘정치보복’ ‘관행’ 운운하며 감싸고 도는 것도 이젠 설득력이 떨어졌다. 법원이 “범행을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영장을 발부한 만큼 더는 시비를 걸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인식으로 국정원을 대하고 운영했으니 대북·해외 정보엔 무능하면서 국내 정치공작에만 몰두하는 한심한 정보기관으로 전락한 것이다.

새 정부 들어 국정원은 국내 정치와의 단절을 공언하는 등 개혁 작업이 한창이다. 국정원 개혁발전위는 명칭 변경과 위법 명령 거부 등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을 연내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이름을 바꾼다면 창설 이래 네 번째다. 과거에도 이런 개혁을 수없이 해왔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명료하다. 개혁은 허울뿐, 대통령이 국정원을 권력의 사설기관쯤으로 여기고 충직한 손발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국정원장들의 수난이 끊이지 않는 것도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보다 정권 친위부대로 전락한 탓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금지”를 선언한 바 있다. 통치권자가 국내 정치 보고를 안 받겠다는데 이보다 더 좋은 때가 없다. 국정원은 이번 기회에 정권이 이용할 생각을 못하게 법적·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안보를 위한 중추적인 정보기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못을 박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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