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4 (금)

[이상한 책을 보았다]베고 쪼개고 태우면서 행복을 느끼는…북유럽인들의 별난 나무 사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나무

라르스 뮈팅 지음·노승영 옮김 |열린책들 | 280쪽 | 1만5800원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과 헷갈리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란다. <노르웨이의 나무>는 말 그대로 나무, 그중에서도 장작 이야기다. 책의 부제는 ‘북유럽 스타일로 장작을 패고 쌓고 말리는 법’이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30만부가 팔렸다.

북유럽 사람들은 나무를 사랑한다. 그들의 나무 사랑은 심고 가꾸고 바라보는 차원을 넘어, 베고 쪼개고 태우는 데 이른다. 석유나 전기 난방이 보편화된 현대에 이르러 북유럽의 나무 난로 난방은 오히려 늘었다. 심지어 노르웨이는 산유국인데도 그렇다. 더 효율이 높고 오염이 적은 나무 난로를 개발하기 위해, 더 사용하기 좋은 도끼를 만들기 위해 북유럽 기업들은 그 어떤 첨단 IT기업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

경향신문

<노르웨이의 나무>는 집 앞 우편함까지 오가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노인이 트랙터가 마당에 쏟아 놓은 자작나뭇더미를 반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난방을 할 필요가 없는 4월이지만, 땔나무는 이 시기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건 북유럽 사람들의 상식이다. 그래야 겨울이 오기 전까지 적절히 건조시킨 생나무를 준비할 수 있다. 장작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성탄절을 즈음해 ‘진실의 순간’을 맞는다. “겨울에 가족을 오들오들 떨게 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노인은 어디서 힘이 났는지 매일 장작을 팬다. 나뭇더미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든다. 노인이 한 달 동안 나뭇더미와 씨름한 뒤 마당에는 불쏘시개로 쓰려고 모아둔 잔가지, 대팻밥, 나무껍질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못지않은 ‘노인과 장작’이다.

북유럽에서 나무 난로는 낭만적인 난방 수단을 넘어선다. 이곳에서 온도계는 쉽게 영하 40도를 가리킨다. 몇 시간만 전력 공급이 중단돼도 비상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노르웨이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 주택은 대체 난방 수단을 갖추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책은 땔감 준비하기가 단순하게 힘쓰는 일이 아니라, 고도의 지식과 세심함이 필요한 일임을 보여준다. 너도밤나무·물푸레나무·단풍나무·자작나무가 지닌 땔감으로서의 특성, 체인톱이나 도끼의 브랜드별 특성과 구입하기 좋은 시기, 장작 팰 때의 복장, 장작을 쌓는 다양한 방법(해바라기벽형, 원형, V꼴 등), 난로의 종류와 설치 및 관리방법까지 알려준다. ‘노르웨이코드’ ‘노르웨이큰코드’같이 장작을 측정하는 단위를 소개하고, 각 나무의 ㎏당 발열량도 제시했다. 장작 팰 때 받쳐놓는 모탕에 대해서는 따로 한 챕터가 마련됐다. “모탕은 벌목인 자신의 개인적 기념물이다. 베이고 파인 흔적이 많을수록, 나뭇조각이 많을수록 모탕은 마당에서 더 당당하게 서 있다.”

평생 장작을 패거나 나무 땔 일이 없는 한국 독자에겐 낯선 얘기지만, 그 정교하고 정성스러운 세계관에 스르르 빠져든다. “갓 벤 나무의 냄새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결코 잊을 수 없지. 수액이 흐르는 봄에 금방 벤 흰 나무의 냄새는 생명 자체인 듯 머리칼에 이슬을 머금었지” 같은 문장을 보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