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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글로벌 시시각각]무함마드 왕세자의 사우디,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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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사촌형을 몰아내고 왕세자 자리에 오른 무함마드 빈 살만은 경제와 사회개혁을 외치며 ‘비전 2030’, 여성운전 허용, 네옴 신도시 건설, 부패척결, 온건 이슬람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사우디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민주적인 정치개혁 시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왕세자의 반대파가 처벌되고 입헌군주제 등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이슬람 성직자와 학자들이 체포·구금 됐다. 무함마드는 왕자든, 장관이든 왕위계승에 걸림돌이 되는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금까지 비밀에 붙였던 왕실의 내부투쟁을 수면 위로 올렸다. 왕가의 이미지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지난 4일 부패혐의로 세계 최대 부호 중 한 명인 왈리드 빈 탈랄 왕자와 고 압둘라 국왕의 아들이자 국가방위군장관이었던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 등이 리츠칼튼 호텔에 갇혀 있는 모습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9일에는 왈리드의 딸 림 공주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숙청된 것으로 보도됐다. 숙청대상자가 500명이 넘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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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에는 72세의 무크린 전 왕세제가 헬기사고로 사망한 아들 만수르 왕자의 장례식에서 직접 운구하는 사진이 언론에 실렸다. 만수르 왕자는 숙청을 피해 도피하던 중 예멘국경 근처에서 사우디 군의 총격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약 1000명의 왕자들에게 무함마드의 왕위계승 반대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왈리드 왕자의 아버지 ‘레드 프린스’ 탈랄 왕자는 1960년대 이후 입헌군주제 개혁을 강력히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이집트 공화국을 세운 가말 압델 나세르의 자유장교단을 본 딴 자유왕자단을 조직하고 1961년 9월 헌법제정을 제안했지만 사우드 당시 국왕이 거부하자 레바논으로 망명했다. 탈랄 왕자는 2012년 6월 현 살만 국왕이 왕세제로 임명됐을 때 임명절차에 문제를 제기하고 또다시 개혁을 요구했다. 아들 왈리드도 살만의 아들 무함마드의 왕세자 임명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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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는 사우디의 근간인 와하비즘도 허물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리야드에서 개최된 네옴 신도시 건설을 위한 투자유치 대회에서 와하비 이슬람을 적폐세력으로 규정하고 당장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델 알 주바이르 외교장관은 앞서 “극단주의를 퍼뜨리는 이맘(성직자) 수천명을 해고했다”며 “쿠란이 오역되지 않도록 교육제도를 현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슬람 원리주의 와하비즘의 창시자 압둘 와합이 내세운 문자 그대로의 쿠란 해석을 전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지난 10일 아랍 뉴스에 따르면 사우디 고위 성직자는 “무슬림은 시아, 수피 모스크, 기독교회, 유대교 사원에서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파트와(칙령)를 내렸다. 와하비즘은 시아파, 수피 뿐 아니라 수니파도 우상숭배, 다신교로 낙인 찍는 극도의 배타성에 기반한다. 이는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고 사우디 왕국을 건설하고 지탱하는 강력한 민족주의 이념으로 활용됐다. 이 파트와는 사우디의 종교·정치 이념 와하비즘의 종언을 선언한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안으로는 숙청을, 밖으로는 이란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담대하고 기묘한 동맹’에 기대 정국을 돌파하려 한다. 사우디와 아직 국교도 맺지 않은 이스라엘이 핵심 파트너다. 지난 6일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난 2년 동안 이스라엘 고위 관리들과 수차례 만났다. 2015년엔 이스라엘 최남단 항구도시 엘리아트에서, 올해 3월에는 요르단에서 열린 아랍정상회의에서 이스라엘 관리들을 따로 만났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고위 관리들은 정기적으로 공동 전략회의를 열고 있다. 2015년 이란 핵협상 타결은 양국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에도 무함마드 왕세자는 텔아비브를 비밀리에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현안을 논의했다.

직후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사우디의 강력한 반정부 세력 알 사흐와의 지도자 등 30여명이 체포·수감됐다. 이들이 “스파이 조직 무슬림형제단 구성원”이라는 이유였다. 이집트에 설립된 무슬림형제단은 아랍 최대 풀뿌리 이슬람단체로 카타르의 후원을 받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사우디가 지난 6월 걸프 국가를 규합해 카타르와 단교한 빌미였다. 카타르에 무슬림형제단과 그 분파인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지원을 끊으라고 압박했지만 카타르는 거부했다. 아랍의 봄 이후 부상한 무슬림형제단은 사우디와 걸프 왕정국가에는 체제를 불안하게 하는 ‘테러조직’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가자 지구의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각각 북쪽, 남쪽에서 위협하는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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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에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이 난데없이 리야드로 호출당했다. 이스라엘 언론을 통해 사우디가 압바스에게 미국의 평화 중재안을 받아들이든지, 사임하라고 했다는 얘기가 나왔고 압바스의 파타당은 이를 부인했다.

직전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는 리야드 방문 중 사임을 발표하고 지금까지 사우디에 있다. TV인터뷰에서 “곧 레바논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사우디가 (헤즈볼라를 겨냥해) 사임을 강요하고 억류했다’는 설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레바논에서 하리리의 수니파, 시아파 헤즈볼라와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기독교도 마룬파 대주교도 지난 14일 리야드를 찾았다.

지난 10일 타메르 알 사브한 사우디 아랍·걸프 담당 장관은 국영 알아라비야 인터뷰에서 “레바논은 헤즈볼라에 납치됐고 그 뒤에 이란이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사우디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도록 부추기면서 레바논에 전쟁을 선언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사우디와 손을 잡고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제거하려 애쓰는 배경을 이해하려면 동지중해 천연가스전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중동의 에너지 강국을 꿈꾸는 이스라엘은 지난 6월 그리스, 이탈리아 등과 2025년까지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보내는 가스관 건설계획에 합의했다. 나아가 자국 가스관과 중동에 산재하는 가스관을 통합해 자국을 천연가스 허브로 만들려 한다. 그러려면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무력화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가자 해안을 봉쇄하고 팔레스타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가자와 이스라엘 연안 대부분은 가스전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스전 탐사와 채굴을 미국 기업 노블에너지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은 이라크 키르쿠크-하이파 송유관의 출구였던 이스라엘 해안도시, 하이파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무슬림형제단, 시아파가 주축인 국내 반대파를 탄압하려는 무함마드의 행보는 이스라엘의 에너지 패권을 돕고 있다. 무함마드가 사활을 건 네옴 신도시에는 이스라엘 기업들이 투자하고 건설사업 운영은 미국 기업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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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정 단국대학교 중동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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