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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만한전석, 문 대통령도 맛볼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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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정치의 정수 보인 시진핑 주석 / 문 대통령, 식단보다 국격·국익 살펴야

프랑스의 음식 자부심은 남다른 데가 있다. 독일 요리는 멀쩡한 음식으로 치지 않는다. 스페인 요리는? “피레네산맥 너머는 아프리카”라고 비웃는다. 정치인도 예외가 아니다. 2005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한 자리에서 “음식이 맛없는 나라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고 단언해 물의를 빚었다. 그 맛없는 음식은 영국 음식이란 보도가 나갔기 때문이다. 시라크는 호기롭게 한마디 보탰다고 한다. “영국 음식은 핀란드 다음으로 맛없는 음식”이라고.

음식은 문화라고 혹은 역사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음식은 정치이기도 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1박2일 방한 중 청와대 국빈만찬 자리에 나온 ‘독도새우’가 한국·일본 간 갈등을 키운 현실을 보라. 청와대가 왜 굳이 잡채에 들어간 새우를, 그것도 원래 이름인 도화새우 대신 독도새우로 소개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음식=정치’ 등식을 확인하려는 시도였다면 대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한술 더 떴다. 자금성을 통째로 비워 ‘만한전석(滿漢全席)’으로 트럼프를 대접했다. 만한전석은 청나라 만찬 양식이다. 만석은 청의 지배 민족인 만주족 연회, 한석은 피지배 민족인 한족 연회를 가리킨다. 둘을 합쳐 만한전석이다. 두 민족과 문화의 융화를 원한 청 조정의 심모원려가 담겨 있다. 만한전석은 태생적으로 정치적이란 사실을 말해준다. 청의 유산으로 트럼프를 상대했으니 중국 입장에선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고 해야 할까. 시진핑은 음식 정치의 정수를 보인 셈이다.

트럼프가 맛본 구체적 메뉴는 알 길이 없다. 철통 보안 때문이다. 하지만 만족도가 높았으리라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트럼프는 심지어 만찬 이튿날인 9일 “불행하게도 미·중 무역관계는 일방적이고 불공평하다”고 지적하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을 비난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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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편집인

이제, 트럼프는 가고 만찬 뒤처리가 남았다. 청와대가 조심스레 다룰 것은 독도새우 파문만이 아니다. 12월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문제도 있다. 문 대통령은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 만한전석이 펼쳐진 뒤끝이니 세상은 주목할 것이다. 시진핑 접대가 어찌 달라지는지를. 물론 과잉 기대는 금물이다. 정글은 열대몬순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도 정글이다. 트럼프는 힘이 있어 만한전석 대우를 받은 것이다. 기대를 키우다간 실망만 커질 수 있다.

조짐도 좋지 않다. 문 대통령은 11일 시진핑에 이어 13일 리커창 총리를 만났다. 우리 정부가 앞서 3불(사드 추가 배치도, 미국 미사일방어 체계 참여도, 한·미·일 군사동맹도 없다) 입장을 표명하고, ‘인도·태평양 안보 공조’를 놓고 혼선을 빚은 것도 두 회담 성사를 위한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확은 기대에 반한다. 리커창은 ‘사드 보복의 완전 해제’ 요구에 확답하지 않았다. 시진핑은 외려 ‘역사적 책임’을 거론했다. 중국은 한국을 어찌 보는 것인가. 프랑스 미식가들이 주변국 요리를 업신여기듯이 보는지도 모른다. 극진한 환대를 바랄 정황과는 거리가 멀다.

왜 이 지경인가. 중국만 바라보는 ‘천수답’ 경제구조가 가장 큰 취약점이다. 제2, 제3의 사드보복이 얼마든지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근본적 타개가 시급하다. 정부는 일단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관계 강화에서 출구를 찾는 인상이다. 바람직하다. 아울러 기술·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토끼를 잡는 일도 급하다. 그렇게 다각도 노력을 경주해야 세계 무대에서 계속 약진할 수 있고, 국제사회 정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향후 사드보복 걱정도 덜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다. 12월에 만한전석 대접을 받는다면 문 대통령도 그렇고 국민도 기분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상차림만 살필 일은 아니다. 국격과 국력, 국익을 통찰해야 한다. 국민과 함께 갈 길을 성찰해야 한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설혹 문 대통령이 중국에서 맛없는 음식으로 입맛을 버리고 돌아오더라도 5000만 국민은 박수를 칠 것이다.

이승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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