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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굿모닝 내셔널] 용인 ‘빵 할아버지’의 폭신폭신한 이웃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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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마다 소외된 이웃에게 빵 배달

일주일치 빵 외에 가끔 고구마, 무도 전달

4년간 친동생처럼 말벗 해주고 건강 살펴

노인 거주지원 시설에선 레크레이션 강사도

고희연 행사대신 2000만원 용인시에 쾌척해

"환하게 웃는 할머니 못 잊어, 봉사 계속할 것"

중앙일보

매주 금요일마다 소외된 이웃들에게 빵을 배달해 '빵 할아버지'로 불리는 모질상(70)씨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앙시장 안 빵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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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토박이인 모질상(70)씨의 별명은 ‘빵 할아버지’다. 밥보다 빵을 좋아해서, 동네 빵집을 운영해서도 아니다. 4년 넘도록 매주 금요일마다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을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눠주면서 얻은 별명이다.

손이 큰 모씨의 온정은 빵에만 그치지 않는다. 구슬땀으로 손수 가꾼 호박·고구마·무를 나누고, 장학금도 쾌척한다. 나눔에 인색하지 않다. 자비로 홀몸노인 가정의 고장 난 보일러를 고쳐주기도 했다. 이쯤 되면 용인시 처인구 중앙동 히어로다. 하지만 빵 할아버지로 불리는 게 더 좋다고 한다. 지난 9일 빵 할아버지를 만나봤다.

모질상씨가 빵 할아버지가 된 것은 2013년 6월부터다. 당시 신미영 중앙동주민센터 복지팀장을 찾아 홀몸노인들에게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을지 머리를 맞대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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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39;2017년 행복나눔인 상&#39; 수장자로 선정된 모씨.




모씨는 2003년부터 ‘중앙동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민간 봉사단체를 설립해 활동해오며 중앙동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어왔다. 중사모 회원들이 매월 낸 1만원의 후원금으로 중앙동 내 소외계층을 지원해왔다. 중사모 회원 수는 한때 400여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개인 사정으로 봉사활동을 4년간 쉬었다. 몸이 근질근질하더라(웃음). 나이가 들면 몸이 불편해 집에서 뭘 해 먹는 일도 어렵게 된다. 홀몸노인들에게 반찬이나 도시락을 배달해볼까도 고심해봤는데, 냉장고에서 꺼내 간편하게 데워 먹을 수 있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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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배달때 이용하는 모씨의 오토바이. 8만km 이상을 달렸는데 나눔 실천 덕분인지 고장이 안 난다고 한다. 김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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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씨는 매월 첫째·셋째 주 금요일에는 중앙동에 거주하는 75~90세 홀몸노인 35명을 일일이 찾아 일주일 치 빵을 배달한다. 10여년간 함께 해온 빨간색 스쿠터를 타고 좁은 골목골목을 누빈다. 애마 스쿠터에는 보통 한 번에 250여개의 빵이 실려 있다.

모씨는 홀몸노인의 손에 빵을 쥐여주면서 막내아우나 아들처럼 친근하게 안부를 묻고 건강상태를 챙긴다고 한다. 홀몸노인들에게 빵 할아버지는 이웃 이상이다.

그는 나머지 둘째·넷째 주에는 노인 거주 지원 시설인 사랑의 집을 방문, 빵을 전달한다. 매월 단체 생일상도 차린다. 이때는 빵 외에 부드러운 떡 케이크도 함께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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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레이션 행사장에서 필살기 다리 찢기를 선보이고 있는 모질상씨. 학창시절 기계체조 선수로 활약한데다 꾸준한 운동 덕분이다. [사진 모질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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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에서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로도 활약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익힌 기계체조를 응용한 간단한 스트레칭 체조를 선보인다. 폼으로 든 기타 아래로 양다리를 찢는 묘기도 보여준다.

한 달에 들어가는 빵값만 70여만원이나 된다. 전액 자비다. 모씨는 “서로 나누면서 사는 거지 뭐”라며 웃는다. 그는 지난달에는 중앙동에 고구마 150상자(한 상자 10㎏)를 기증했다. 또 올 5월에는 자식들이 마련해 준 2000만원의 칠순 축하금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며 용인시에 선뜻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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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빵 할아버지&#39; 모질상씨가 2000만원의 고희연 행사비를 용인시에 쾌척한 뒤 정찬민 시장, 이영민 중앙동장(사진 왼쪽 두번째부터 차례로)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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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평(3900㎡) 크기 밭에서 호박이며 고구마, 무를 수확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이런 게 다 사람 사는 정(情) 아니냐. 올해 유난히 가뭄이 심해 걱정했는데,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서인지 농사가 잘됐다.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어수선해 칠순 잔치한다고 주변에 초대장을 보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라가 안정된 후에 이미 지난 칠순 잔치를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않냐.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3명의 자식이 칠순 잔치를 하려 모아둔 2000만 원을 받아 용인시에 쾌척했다”고 말했다.

모씨는 넉넉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대학을 포기하고 간 군대를 제대한 뒤 식료품 장사 등 죽기 살기로 일했다. 어느 날 문득 어린 시절 이웃들에게 받던 온정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생각에 나눔을 실천했다. 보건복지부의 ‘2017 행복 나눔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4년 넘도록 빵을 배달하다 보니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여러 개다. 그중 지난해 11월 최모(84·여)씨네 집에 일이 터진 게 대표적이라고 한다. 얇은 철판 안에 스티로폼을 채운 건축자재인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최씨네 보일러실이 차 사고로 일부 부서지면서 보일러까지 고장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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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에게 전달할 고구마 수확에 나선 모질상씨. [사진 모질상]




“다급한 최씨가 자녀들 대신 나에게 연락을 했다. 보일러가 사고 충격으로 말 그대로 결딴났더라. 하필이면 또 그날이 금요일이었다. 행정기관에 연락해도 주말이 껴 며칠 늦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직접 보일러 수리기사를 불러 고쳤다. 그때 환하게 웃으시는 최 할머니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눔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빵 할아버지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구운 빵이 들려 있다. 늦가을 추위에 따스한 온기를 주는 빵이었다.

용인=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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