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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현장에서]"불통 정부"..한미 FTA 공청회 예고된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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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한미 FTA 개정 첫 공청회 파행된 이유

①"전화 한 통도 없더라"..산업부 밀실 준비

②"농업 피해분석 비공개"..부실 보고서 발표

③"토론조차 없는 공청회"..절차상 위법 논란

충돌 양상, 정부 "신속 협상" Vs 농민 "18일 집회"

이데일리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전화 한 통 받은 게 없다. 일방통행식 정부다. 과거와 변한 게 없다.”

지난 10일 밤 걸려 온 전화기 너머 목소리엔 여전히 울분이 느껴졌다. 김순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농민들이 반발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정부의 불통에 화가 치밀었다고 했다. 물리력을 사용한 농민들에 대한 비난에 앞서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정부의 행태부터 보라는 주장이었다.

◇첫 단추 잘못 꿴 한미 FTA 공청회

10일 열린 공청회는 지난달 4일(현지시간 기준) 한미 양국이 워싱턴 D.C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절차를 밟기로 합의하면서 착수됐다. 통상절차법에 따라 공청회, 경제적 타당성 검토, 국회 보고 등의 개정절차를 밟아야 개정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이번 공청회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미 FTA 개정절차에 착수하는 중요한 첫 단추였다.

하지만 이번 공청회는 파행이 예고됐음에도 철저하게 밀실에서 준비됐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계속 전달했으나 허공에 메아리로 전락했다”며 반발했다. 정연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은 성명을 통해 “(공청회) 발표 내용을 토론자 그 누구에게도 미리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 전화를 일체 받지 않았다. 다른 부처 관계자들도 “산업부와는 우리도 통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청회 발표 내용도 부실했다. 정부 안팎에서 가장 주목했던 건 ‘경제적 타당성 검토’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산업부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산업연구원·농촌경제연구원에 의뢰한 것이다. 한미 FTA 개정협상에 따라 국내 시장에 미칠 피해·영향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한 보고서다.

◇농업 피해 분석 결과 쏙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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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청회에서는 제조업 관련 분석 결과만 발표됐다. 농업 피해 분석결과는 쏙 빠졌다.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통화에서 “미국 정부는 공산품이 아니라 미국 기업이 돈 벌 수 있는 농산물 분야 등으로 요구해 올 것”이라며 “농업이 가장 민감한 분야”라고 말했다. 이에 농민들은 “피해 분석 결과도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하게 하고 얼마나 더 퍼주려고 하느냐”고 발끈했다.

절차상 위법 논란도 제기됐다. 이날 공청회에서 시작 20분 만에 중단돼 종합 토론·질의 응답은 진행되지 못했다. 행정절차법(2조)에 따르면 공청회란 행정청이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어떠한 행정 작용에 대해 당사자,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 그 밖의 일반인으로부터 의견을 널리 수렴하는 절차를 뜻한다. 송기호 민변 국제통상위원장은 “토론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으니 오늘 공청회는 무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성천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무산 여부에 대해 공청회장에선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산업부는 1시간여 뒤 보도자료를 통해 “통상절차법 제7조에 따른 한미 FTA 개정 관련 공청회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됐다”고 발표했다. 장성길 미주통상 과장은 통화에서 “행정절차법 22조에 보면 의견 청취가 현저히 불가능할 경우 개최한 거로 본다는 단서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연 “명백히 알릴 것” 공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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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는 충분한 의견 수렴을 강조해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3일 워싱턴 D.C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FTA 협상 관련해 “중요한 건 과정·절차에서 국민들에게 명명백백하게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농민들 반발이 심한데 정부 대책으로 고심하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8월22일 기자들과 만나 “당당하게 협상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약속은 사실상 공염불이 됐다. ‘한미 FTA 개정절차 착수 합의(10월4일)’→‘한미 FTA 공청회 파행(11월10일)’→‘11월 중 국회 보고 완료’→‘빠르면 12월 개정협상 착수’ 순으로 숨가프게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누구를 위해 이렇게 ‘급한 협상’을 하는지 공무원들은 입을 닫고 있다. 농민들은 “본때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며 오는 18일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이대로 가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FTA 개정 논의가 첫 단추를 잘못 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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