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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영국 왕실마저 사로잡은 농부들의 투박한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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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와 함께한 나무는 가구 재료로 나날이 주목받고 있다. 특유의 친근함과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목가구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다음 세대에 대물림할 만큼 정이 든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와 함께 목가구가 우리 삶의 안식처로 자리잡기까지 거쳐온 기나긴 여정을 따라가 본다.

[정은미의 木가구 에피소드] ⑤컨트리 스타일의 대명사가 된 윈저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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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양식과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은 오리지널 영국식 윈저의자. /www.fauld.com, www.1stdibs.com


17세기 말 영국에서 주로 농민이 사용했던 윈저(Windsor)의자는 목가적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겨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무려 왕실에서도 애용했을 정도다. 18세기 초 미국이 수입하고, 재생산해 선보인 후 다양한 형태로 널리 유행하면서 컨트리 스타일의 대표적 가구가 됐다. 아직까지도 현대 디자이너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다.

■미국 대중 가구의 황금기를 일궈내다

17세기 미국은 유럽 각국 이민자들이 전파한 양식의 종합 전시장이었다. 이로 인해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유행한 미국의 인테리어나 가구 양식은 컬러니얼 스타일(Colornial style)로 총칭할 수 있다. 그 시기에 뉴 잉글랜드(New England) 지방에 정착한 영국식 인테리어나 가구 양식이 미국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이 중에서도 17세기 후반 영국 농민들이 사용했던 지방색 풍부한 윈저 의자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버킹엄셔(Buckinghamshire) 주 하이위컴(High Wycombe)에서 주로 생산됐고 생산자와 런던 사이의 무역 중심지가 된 윈저 지방 이름을 따 ‘윈저 의자’라 불리게 됐다.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후 다양한 형태로 제작돼 나중에는 ‘미국식 윈저 의자’로도 널리 알려졌고 1740년~1820년 대중적인 가구로 자리매김했다.

좌판은 조각 기법으로 제작했지만 등받이의 구성 요소인 스핀들과 다리 등 대부분은 목선반 가공으로 쉽게 만들 수 있었다. 19세기 초부터 가구 제조업체들은 부품을 분리해 상호 교환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국 각지의 공예가가 쉽게 조립하고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중 가구의 황금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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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받이가 높은 콤 백(Comb Back) 스타일의 윈저의자. /ⓒThe Colonial Williamsburg Foundation. Museum Purchase./www.emuseum.history.org


■영국서 탄생, 미국 장인들 손끝에서 완성

윈저 의자는 영국이 개발했지만 미국의 장인들이 등받이나 다리 디자인을 더욱 세련되게 개량시켜 널리 보급했다. 오리지널 영국식 윈저 의자는 등받이 중앙에 스플랫(Splat)이라 부르는 투각장식이 특징적이다. 하지만 미국 장인들은 이를 없애고 등받이에 댄 봉과 다리를 가늘게 만들어 생산하기 쉬운 형태로 발전시켰다. 또 다양한 컬렉션으로 차별화도 꾀했다. 증기(Steam) 곡목으로 구부려 만든 ‘활’모양에 목선반으로 깎은 가늘고 높은 막대기를 여러 개 배열한 등받이, 바깥쪽으로 뻗은 다리와 말 안장(Saddle Seat) 형태의 융기로 조각한 목재 좌판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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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받이가 낮은 '로우 백(Low Back)'스타일의 윈저의자. /www.chrisharter.com


이 의자는 등받이 디자인에 따라 스타일을 구분한다. 등받이가 낮은 ‘로우 백(Low Back)’과 높은 등받이가 달린 ‘콤 백(Comb Back)’, 그리고 반원형 등받이가 달린 ‘후프 백(Hoop Back)’이 윈저 의자의 기본 형태다. 세 가지 기본 유형에서 다양한 변형 모델이 만들어졌다. 윈저 의자에는 다양한 나무가 사용됐다. 예를 들면 튤립, 포플러, 소나무는 조각이 용이해 좌판에 주로 쓰였고 단단한 단풍나무는 선반 가공에 적합해 다리와 팔걸이 제작에 쓰였다. 백참나무와 히코리, 물푸레 나무는 쉽게 휘는 성질을 이용했다. 활 모양의 가로형 장식대 혹은 스핀들(Spindle)이라 불리는 원통형 막대기를 구성했다.

■윈저 라이팅 의자를 디자인한 토마스 제퍼슨

대중적인 인기를 끈 윈저 의자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다. 비를 피하기 위해 농가에 들른 영국 국왕 조지 2세(George II)가 그곳에 있던 윈저 의자의 편안함과 단순함에 깊은 인상을 받아 왕실 가구 제작자에게 복제품을 의뢰해 윈저궁 정원에서 사용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미국 건국 초기 역사에서도 윈저 의자는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명사들이 이 의자를 소유하거나 의자에 앉아 그려진 초상화를 흔히 볼 수 있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윈저 회전(Swivel)의자를 발명하기도 했다. 1775년 그는 미국 독립선언문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 영국식 윈저 의자에 앉아있었다. 이 때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불편함을 개선하려고 의자 좌판을 회전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냈다. 이로써 최초의 회전의자가 탄생했다. 이후 필기용 테이블과 열쇠가 달린 사물함까지 장착해 학창 시절의 추억이 담긴 윈저 라이팅(Writing)의자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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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재퍼슨이 디자인한 윈저 라이팅 체어. / 출처www.1stdibs.com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고도로 산업화된 대량 생산 가구에 밀려 점차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20세기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윈저 의자를 나름대로 재해석한 디자인을 끊임없이 선보이면서 그 생명력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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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가 콤 백 스타일을 재해석했다. 플라스틱 소재로 세련되고 모던하게 재탄생시켰다. /ⓒ 디자인 팩토리/www.defo.co.kr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는 상명대에서 목공예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 도무스아카데미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목조형 작품인 얼레빗 벤치 ‘여인의 향기’가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수록됐다. ‘정은미의 목조형 가구여행기’와 ‘나무로 쓰는 가구이야기’를 출간했다. 현재 리빙오브제(LIVING OBJET)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은미 상명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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