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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재개발이 뭐라고…” 사라진 집 보고 학교 다녀온 딸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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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해 12월 철거 전 A씨가 살던 빌라(붉은색 원)의 모습. [부산경찰청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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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날 학교·직장을 다녀오니 집이 철거돼 있었다. 중학생 딸은 철거 잔해 속에서 짓이겨진 자신의 교복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 날, 부산시 남구의 4층짜리 빌라에 전세를 얻어 단란한 생활을 꾸리던 가족이 겪은 일이다. 재개발 지역 내 빌라라는 이유로 사람이 없는 서너시간 동안 송두리째 부숴버린 것이다. 가족에게 남은 건 당장 입고 있었던 옷가지 밖에 없었다. 한겨울 추위가 네 사람의 살을 파고 들었다.

A(50) 씨는 "어른인 나로서도 크게 충격을 받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오후 4시 경 퇴근한 뒤 철거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말이 나오지 않았던 A씨는 가족들과 다음 날 현장을 찾았다. 한참 예민할 나이인 중학교 3학년 딸(15)과 2학년 아들(13)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땅만 바라봤다. 딸은 잔해 속 짓이겨진 교복을 보고 이내 눈물을 쏟았다. A씨 가족은 이웃 주민의 집에 하루 신세를 졌다가 찜질방, 온천, 모텔 등을 전전하며 힘겨운 겨울을 보냈다.

A씨는 관할 파출소에 가서 겨우 피해자 진술 조사를 받았다. 무너진 빌라는 A 씨가 전세로 들어와 살던 곳이었다. A씨는 "30년 넘게 살던 집의 재개발 이주 보상문제 해결이 잘 안 돼 구한 빌라였다"며 "재개발이 대체 뭐길래 우리 가족을 이렇게 만드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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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철거 후 A씨 가족이 살던 빌라(붉은색 원)가 있던 자리. [부산경찰청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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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가족은 해가 바뀐 뒤 겨우 돈을 모아 40년 된 전세 아파트를 마련했다. 방 2개, 거실 겸 주방, 욕실이 전부다. 전교 상위권에 머물던 딸의 성적은 고교 진학 이후 반에서 중간 정도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편 기습철거에 대한 수사에 나선 부산 남부경찰서는 최근 특수손괴 혐의로 시행사 직원 백모(39) 씨와 현장소장 최모(38) 씨를 구속하고 조합장 김모(54) 씨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백 씨 등은 지난해 12월 26일 오전 11시께부터 오후 2시께까지 재개발 예정지역에 있는 부산 남구 문현동의 4층짜리 빌라를 굴착기로 무단 철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7억4천만원에 매입하기로 한 빌라를 밀어버리고 감정가인 3억6천만원만 주려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백씨 등은 철거 후 "매매협상이 끝나 철거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둘러대다가 주민들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법원에 3억6천만원을 공탁한 뒤 애초 합의한 매매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빌라에는 애초 6가구가 살고 있었지만 2가구는 이주했고 당시 4가구 주민 10여 명이 살고 있었다.

관할 남구청은 문제의 재개발 지역에 대해 사업 승인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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