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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장덕진의 정치시평]경제민주화, 경제민주주의,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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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6·10민주항쟁 기념식과 지난달 미국 애틀랜틱 카운슬에서 주는 세계시민상 수상연설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경제민주화’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우선 경제민주화부터 정리해보자. 일반 국민들에게 경제민주화는 ‘을지로위원회’를 연상시키는 ‘갑의 횡포로부터 을을 지키는’ 것이거나 비정규직을 줄이는 양극화 해소쯤으로 받아들여진다. 학계의 논의는 소위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알려진 헌법 119조 2항을 둘러싼 법학계의 일부 연구를 제외하면 매우 드문 편이다.

경향신문

그중에 주목할 만한 것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학자 시절인 2012년에 발표한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과제’라는 논문이다. 그가 새 정부의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발탁되었을 뿐 아니라 비교적 안정적으로 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김상조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실체적 내용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정의한다 하더라도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이 그 집행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의 의미는 ‘방법론상의 최소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최소 원칙이란 “거래관계의 현실에 기초하여 부담과 편익의 조화, 권한과 책임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진보성향의 학자로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놀랄 정도로 실용적이고 주류 경제학의 핵심 원칙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경제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연설을 통해 드러나는 문 대통령의 인식은 경제민주주의를 기존의 경제민주화의 상위개념이자 하나의 사회모델로 보고 있는 듯하다. 6·10항쟁 기념식에서는 양극화가 경제적 불안요인을 넘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의미의 경제민주주의는 미국의 다원주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1985년 출간한 <경제민주주의 서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보수성향이 강한 다원주의 정치학의 태두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가장 우려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과 주요 국제기구들은 지나친 양극화가 ‘대의의 불평등’을 낳음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대파에 의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문 대통령이 다원주의 정치학자의 이론을 꺼내든 것은 절묘한 카드이다. 같은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경제민주주의를 사회적 대타협까지 포괄하는 하나의 사회모델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시민상 수상 연설에서도 “새로운 대한민국은 경제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해 나아갈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1987년 민주화의 경험을 들어 “세계가 고민하는 저성장·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롭게 쓴 대한민국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했다. 이것 역시 87년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체제의 밑그림으로 경제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독일의 번영을 가능케 한 사회적 시장경제는 각 정당은 물론 전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장의 효율을 최대한 활용하되 사회적으로 합의한 틀 안에서 활용한다”는 원칙이다. 효율은 최대한 살리되 그것을 위해 인간을 생존권과 사회권의 최저선 밑으로 내몰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때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몸살을 앓던 스웨덴의 반전 계기는 살트셰바덴 협약이었고, 그 후 노총이 제시한 성장모델인 렌-마이드너 모델은 수십년의 번영을 가져온 상생의 모델이었다.

우리도 사회적 합의의 틀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데 합의할 수 있다면 다시 성장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상충하지 않고 선순환할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경제민주주의는 새로운 사회모델의 밑그림이고 경제민주화는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방법론적 원칙이며,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라고 읽힌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내년 지방선거 때로 예상되는 개헌 국민투표가 떠오른다. 이 밑그림이 실현되려면 경제민주주의의 정신은 새 헌법 곳곳에 녹아들어가야 한다. 개헌이라면 늘 권력구조 이야기만 나오던 상황에서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선거제도 개편이나 경제민주주의가 함께 논의될 수 있다면 반길 일이다. 향후 수십년간 시민들의 삶을 규정할 개헌은 국회 개헌특위가 독점할 일은 아니다. 국회의 권한과 책임을 다하되 기존 체제의 한계에 속박되지 않는 시민적 숙의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는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학습하면서 숙의하고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며 그 결론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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