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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사설]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 존엄사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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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 불능의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존엄사가 가능해진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앞두고 23일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신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를 거쳐 연명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다. 다만 통증 완화를 위한 진통제 투여나 영양분·물·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존엄사는 안락사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존엄사가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라면 안락사는 죽음을 의도적으로 유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존엄사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만 선택할 수 있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란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다. 안락사는 회복 불능의 환자가 자신의 결정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료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존엄사는 영국·네덜란드·대만·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201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 89%가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반대했다. 하지만 한국인은 생의 마지막 10년 중 절반을 질병으로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는 통계가 말해주듯 ‘죽음의 질’은 나쁜 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연구소가 2015년 40개국을 대상으로 한 ‘죽음의 질’ 조사에서 한국은 최하위권인 32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한 해 전체 사망자의 20%가 심폐소생술이나 항암제 투여 등으로 고통을 겪으며 죽음에 이르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본격적인 시행까지 남은 기간에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2015년 7월부터 호스피스에 건강보험이 적용된 것 말고는 존엄사를 배려하는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전국 완화의료전문기관 81곳을 통틀어 호스피스 병상은 1321개에 불과하다. 전체 말기 암 환자의 10% 수준이다. 정부는 연명치료를 거부한 환자들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 인프라를 서둘러 구축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연명치료 중단이 생명경시로 흐르지 않도록 의료 윤리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복지국가라면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 못지않게 죽음의 질을 높이는 데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 품위 있는 죽음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복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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