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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왜냐면] 공깃밥 한 그릇 300원, 비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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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홍수정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부장

가을이다.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단풍이 어디 산에만 있으랴. 우리네 들녘 또한 노란 황금빛 물결이다. 다행히 태풍 없어 농부의 땀으로 키운 벼들이 어느 화가도 그리지 못한 풍경화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 들녘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정성들여 키운 자식 같은 벼들이 애물단지로 보인 지 오래다. 정부의 개방농정과 농업말살정책은 가장 중요한 주곡인 쌀마저 농민들의 근심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직장인 월급이 30년 전으로 대폭락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러한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쌀값이 30년 전으로 대폭락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 농민들은 30년 전으로 대폭락한 쌀값으로 만신창이 신세가 되었다. 현재 쌀값은 80㎏ 한 가마니에 13만원 선이다. 2005년 쌀값 80㎏ 17만83원과 비교하면 할 말을 잃게 된다. 20년 전 라면값이 150원, 현재는 800원이다. 껌값은 150원 하던 것이 1000원이다. 모든 생산물의 물가는 오르는 게 정상인데 왜 농산물의 가격은 오히려 떨어지거나 정체된 것인가? 어려운 경제학의 원리를 모르는 농민들에게 이 상황은 체념하거나 농사를 접거나 아스팔트 위에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한창 수확기인 이 시기에 농민들이 나락을 싣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쌀값 보장을 외치는 말도 되지 않는 현실이 벌어진다. 해가 바뀌어도 농민들이 이른바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며 투쟁하는 이유다.

쌀값 대폭락의 주요 원인은 41만톤(우리나라는 1년에 쌀을 400만톤 정도 수확한다. 전체 수확량의 10%를 차지한다)이나 되는 저율관세할당(TRQ·일정 물량에 대해 낮은 관세를 매기는 제도) 쌀 수입에 있다. 이로 인해 재고미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관리가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의한 TRQ 쌀 수입은 농민들에게 종신제 징역형과 같다. 협정문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세계무역기구를 탈퇴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 쌀을 영원히 구매해야 한다.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세계무역기구가 오히려 날강도 같은 강제의무규정을 만든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들어오는 41만톤 TRQ 물량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쌀값 폭락 해결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자유무역과, 신자유주의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관료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일까. 오히려 풍년 농사와 쌀을 과잉생산한 것이 원인이라며 쌀값 폭락을 농민 탓으로 돌렸다.

이렇게 쌀농사가 제값 받기 힘들어지니 농민들은 작목을 바꿔본다. 과수, 밭작물 등으로 전환해보지만 그것 또한 제값 못 받는 현실은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풍선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농민들에게 작목 전환이 능사는 아니다. 한국 농업에서 쌀농사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전국 110만 농가 중 60%인 70만 농가가 쌀농사를 짓는다. 전체 농가의 연간 농업소득은 1100만원이고 그중 40%는 쌀 소득에서 나온다. 이처럼 쌀농사란 이 땅 농업의 근간이며, 국가 주곡정책의 핵심이다. 그래서 농민은 이 역할에 충실해 왔고 그것을 자부심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쌀값 목표 1875원(1㎏)을 말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최저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쌀값 3000원(1㎏)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은 “쌀값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소비자 물가에 부담이 된다”며 쌀값 인상을 반대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쌀값(1㎏)당 3000원을 공깃밥으로 환산하면 1그릇당 300원으로,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61㎏인 것을 보면 한 달 1만5400원이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 1년에 18만4000원으로 채 20만원도 되지 않는다. 개 사료 값(1㎏)이 1만원인 것을 생각해보면 개 사료 값만도 못한 것이 쌀값인 것이다.

쌀값은 농민 값이다. 쌀값(1㎏) 3000원은 농민이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헌법에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보장 제도를 적시하고 있다. 반면 농민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없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제도는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기초를 만들듯, 헌법에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을 넣어 국가가 제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말이다. 그 시작이 쌀값 보장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쌀값(1㎏) 3000원 보장하라는 농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농업의 근간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쌀값 보장을 외치던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져 돌아가셨다. 무자비한 박근혜 정권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는 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정권교체까지 이뤄냈다. 문재인 정부는 그 혁명의 뜻을 숭고히 이어받아 농업을 보호하고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어느 자리에서 “도시 생활인들이 커피 한잔을 마셔도 공정무역을 말하면서, 내가 먹는 쌀을 생산해 주는 농민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처럼 농업, 농민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예우 없이 건강한 밥상, 청정한 먹거리, 상생은 만들어질 수 없다. 우리는 어느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촛불혁명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2017년 촛불혁명의 농업지표는 공정한 쌀값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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