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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AI권력이 `초양극화사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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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 연구팀 '미래도시 연구보고서'

매일경제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세계가 지배하고 있는 2090년 서울. 이곳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중산층 시민 A씨의 직업은 아기들을 돌보는 '베이비 시터'다. 이미 이 사회에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은 몇 개 남지 않았다. 베이비 시터도 이미 대부분 로봇으로 대체된 지 오래고, 인터넷으로 주문만 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최신형 보모 로봇이 드론에 실려 집까지 배달된다. 김씨의 고용주 B씨가 A씨를 고용한 유일한 이유는 인간만이 가진 따뜻한 감정과 정서를 아기에게 전달해 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A씨와 같은 노동자계층을 이미 오랜전부터 언론에서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 불렀다. 직역하면 '불안정한 노동자'인데, 주로 비숙련 단순 노무직을 일컫는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이 본격화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서울대 공대 교수 3명은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한 2090년께 전 세계는 인공지능(AI) 권력이 계급을 나누는 이른바 '초양극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발달로 모든 것이 연결된 초연결사회에서는 현재의 페이스북이나 구글처럼 플랫폼을 소유한 극소수 IT기업이나 정치인, 인기 연예인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른바 '플랫폼 스타'들이 고급 일자리의 대부분을 독점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인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0.001%와 0.002%에 불과하다. 나머지 99.997%에 달하는 대다수 일반 시민들은 플랫폼에 종속돼 A씨처럼 인공지능 로봇과 힘겨운 일자리 경쟁을 벌이는 단순 노동자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3일 서울대 공대에 따르면 유기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와 김지영·김정옥 연구 교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15명의 공대 연구진은 '미래의 도시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1년여에 걸쳐 심층 연구한 보고서를 오는 27일 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70여 년 후 미래 도시 시민들은 4개 계급으로 분화된 삶을 살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인류를 지배하는 최상층부에는 '플랫폼 소유주'라는 계급이 자리 잡게 된다. 현재의 페이스북, 구글,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전 세계 상위 플랫폼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기업가와 투자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대표 집필자인 유 교수는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이들은 전체 인구의 0.001%에 불과하지만 대부분 인류가 종속된 '플랫폼'을 통해 사실상 부와 권력을 독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바로 아래에는 '플랫폼 스타'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겨난다. 이들은 대중적 호소력을 지닌 정치 엘리트, 예체능 스타, 로봇 설계자 같은 창의적 전문가들이며 플랫폼에서 최대의 성과를 내는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다. 그 아래에는 인간보다 값싸면서도 효율적인 노동력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차지한 인공지능 로봇, 즉 '인공지성(知性)' 계층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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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뒤 미래의 도시는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극소수의 인류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 계층이 극심한 대조를 이루는 `초양극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김정옥, 유기윤, 김지영 서울대 교수팀(왼쪽부터)이 23일 서울 신림동 공대 캠퍼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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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99.997%의 일반 시민들은 '프레카리아트'라 불리는 최하위 노동자 계급으로 전락해 사실상 로봇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된다. 이들은 플랫폼이라는 미래 정보형 기업에 접속해 근근이 수익을 내며, 고정적인 직업도 없이 프리랜서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간다. 고도화된 기술의 AI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가상현실' 공간에 머무르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더욱 가난해진다는 게 연구팀이 예상한 70년 뒤 미래 사회 모습이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AI사회는 '0.003대99.997'이라는 초계급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게 연구팀이 내놓은 섬뜩한 전망이다.

연구진은 인공지능의 발달로 노동은 갈수록 값어치가 낮아져 대부분의 시민들은 경제적으로 커다란 빈곤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부분의 노동은 인간이 아닌 AI가 대체하게 된다. 이들 AI는 '인공지성'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생명체로 노동시장에 등장하고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한 계급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진은 "이들은 2050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이 예측된다"며 "이 과정에서 프레카리아트에 속한 시민들의 거센 저항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전문가들이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지적 능력을 활용해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휴리스틱 방법론(일종의 문헌·추론 연구법)을 사용해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진은 유엔,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통계와 글로벌 컨설팅사 시장 분석 보고서, 미래학자들의 논문 등 수천 건의 자료와 함께 플랫폼, 인공지능, 가상현실, 지능센서, 양자컴퓨팅 등을 변수로 입력해 분석작업을 해왔다.

연구팀은 이와 더불어 가상현실 기술의 획기적 발전으로 현실 도시와 가상 도시가 공존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대부분 시민들은 며칠 또는 몇 달씩 가상 도시에 살게 되고 '플랫폼 소유주'인 IT 공룡기업들은 현재의 서비스를 모두 가상화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인간이 기계에 완전히 대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부터 AI가 사람을 대체하지 않고 보조하는 방향으로 발전돼야 한다"면서 "국가적 AI기술 경쟁에서 도태될 경우 프레카리아트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AI기술 개발에도 민관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보고서를 오는 27일 전북 전주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 열리는 한국공간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전체 연구 결과는 '미래사회보고서'라는 책으로도 출간된다.

■ <용어 설명>

▷ 프레카리아트(Precariat) : 이탈리아어 '불안정하다(Precario)'와 노동자를 뜻하는 영어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 처음으로 주창했다. 인간의 노동이 대부분 AI로 대체된 미래 사회에서 임시 계약직·프리랜서 형태의 단순 노동에 종사하면서 저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계층을 말한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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