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가마니로 시신 2구씩 묻어”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밝혀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5월단체, "30일부터 옛 광주교도소 행불자 발굴"

광주교도소, 사망자 28명 중 시신 11구만 수습

계엄군 지휘관 "밟혀죽은 시신 암매장" 첫 진술

유적지 발굴 방식…유해 발굴, 15~20일 걸려

중앙일보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시민들의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 모습.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관이 없어 가마니로 시신 2구씩을 덮고 묻었다. 시신 12구 중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옮겨진 시신 3구는 밟혀 죽은 시위대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지휘관이던 김모 전 소령이 1995년 5월 29일 서울지검에서 진술한 조서 내용이다.

김 전 소령은 “80년 5월 23일 오후 6시부터 약 2시간에 걸쳐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3명을 포함해 12구의 시체를 매장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전남대에서 방송차량을 이용해 교도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2~3명이 밟혀서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중앙일보

5·18 당시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광주시민들.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18 당시 광주에 파견된 제3공수여단 본부대장이던 그는 시신을 암매장한 곳이 담긴 약도도 남겼다. 5·18 당시 사망한 시민군을 암매장한 상황이 계엄군 지휘관의 진술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그의 진술에는 ‘교도소 담장에서 3m 정도 이격해 매장했다’ ‘전남대에서 방송차량을 이용해 시신 3구를 교도소로 옮겼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지만 사실 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다. 5·18에 대한 신군부의 역사 왜곡과 정부와 군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암매장을 둘러싼 진실이 37년이 넘도록 땅속에 묻힌 것이다.

중앙일보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전경. 5·18 당시 암매장 장소로 유력하게 추정됐던 곳이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80년 5월 시민군과 민주투사들이 투옥됐던 옛 광주교도소가 5·18 당시 암매장의 진실을 확인해줄 증거로 주목받고 있다. 5·18 당시 행방불명자를 찾기 위한 옛 광주교도소의 발굴 작업이 이르면 오는 30일부터 진행되기 때문이다.

5·18기념재단은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와의 협의를 거쳐 옛 광주교도소의 암매장 추정 장소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광주교도소에서 암매장 발굴 작업이 이뤄지는 것은 80년 5월 이후 37년 만에 처음이다. 5·18 당시 보안대 자료에는 옛 교도소에서 억류당한 시민 28명이 숨졌는데 이중 시신 11구만 임시매장된 형태로 발굴됐다.

중앙일보

5·18 기념재단 관계자 등이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외곽에서 5·18 당시 암매장 장소로 추정되는 곳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발굴 장소는 옛 광주교도소 북측 담장 바깥쪽 길이 300m 중 길이 117m, 폭 3~5m 구간이다. 80년 5월 당시 공수부대의 순찰로 인근 부지로 재소자들이 일궜던 농장 인근 지점이다. 현재는 아스팔트 포장 시공과 주변에 주차장·테니스장 등이 조성돼 과거와 지형·지물이 달라졌다.

5·18기념재단 측은 5·18 당시 3공수여단이 주둔했던 현장의 아스팔트와 잡초 등 장애물을 제거하고 표토층에서 10∼30㎝가량을 굴착할 계획이다. 발굴지에는 유적지 발굴 현장에서 활용되는 트렌치(trench·시굴조사 구덩이)를 설치한다.

중앙일보

5·18 기념재단이 23일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기념재단에서 &#39;옛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발굴 관련 브리핑&#39;을 열었다. 김양래 재단 상임이사(오른쪽)와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이 옛 교도소 전경을 보며 발굴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장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보유한 땅속 탐사레이더(GPR·Ground Penetrating Radar) 같은 첨단 장비도 투입된다. 5·18기념재단은 유적지 발굴 방식과 GPR 장비 등을 활용할 경우 유해 매장 여부는 물론이고 과거에 흙을 파내고 메운 흔적 등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굴 현장은 고고학 분야 전문가인 조현종 전 국립광주박물관장이 총괄한다. 최인선 순천대 문화유산연구소장도 ‘6·25 한국전쟁 함평군 민간인학살사건’ 현장을 조사한 경험 등을 토대로 발굴에 참여한다. 유해 발견 여부는 발굴 작업을 시작한 뒤 15~20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앙일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두번째)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를 찾아 5·18기념재단 관계자와 함께 5·18 당시 암매장 추정지 발굴을 위한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유해가 나오면 광주지검이 신원확인 작업에 나선다. 현재 전남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은 5·18 행불자 신고를 한 130가족, 295명의 혈액을 보관하고 있다.

5·18사적지 22호인 옛 광주교도소는 5·18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의 주요 격전지이자 시민군들이 고문을 당했던 장소다. 5·18 당시 이곳에는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들이 주둔한 곳이어서 유력한 암매장지로 지목돼 왔다. 1980년 5월 18일 31사단 96연대 제2대대가 지키고 있다가 21일 오후 5시30분 전남대에서 철수한 3공수여단으로 교체됐다.

중앙일보

5·18 기념재단이 23일 &#39;옛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발굴 관련 브리핑&#39;에서 공개한 옛 광주교도소 전경. 붉은 원안이 이번에 발굴 조사를 벌일 지점이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옛 광주교도소 인근의 민간인 희생자 대부분은 3공수여단이 머무는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5·18기념재단이 김 소장이 증언한 진술과 약도 내용의 신빙성을 높게 보는 것도 그가 당시 3공수여단 본대대장이어서다. 이 곳은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가 “중장비로 땅을 파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지목한 장소 인근이기도 하다.

현재 5·18기념재단에는 김 소장의 증언 외에도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암매장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9일에는 3공수 부사관 출신인 김모씨가 “부패한 시신 5∼7구를 임시로 매장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5·18기념재단이 23일 &#39;옛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발굴 관련 브리핑&#39;을 통해 공개한 김모 전 제3공수여단 본부대장의 약도.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5·18 암매장지 발굴은 2002년부터 3차례에 걸쳐 발굴이 이뤄졌으나 현재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5월 단체들과 광주광역시는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암매장 제보가 접수된 64건 중 중복된 12곳과 제보가 미흡한 46곳을 제외한 9곳에 대해 발굴 작업을 했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문화재 발굴 방식으로 땅의 이력 등을 정밀 조사할 경우 시신을 묻었다가 다시 발굴해 갔는지, 굴삭기로 땅을 팠는지, 삽으로 팠는지 등 동원된 장비까지 확인할 수 있다”며 “5·18 진실 규명 차원에서 복원과 보존까지를 염두에 두고 발굴 조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에서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오른쪽)가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중앙일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5·18기념재단, 5월 단체 대표, 제보자 등이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안에서 5·18 당시 암매장 장소로 추정되는 곳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