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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실력 없는 동물원…“동물 위해 일하는 동물원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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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 동물원 협회 전문성 갖추려 노력

일정 기준 넘는 수준돼야 가입

한국, 여력안돼 동물원법 개정 방어에만

행정직 공무원 쉬었다 가고

동물 알 만하면 떠나는 순환보직의 한계

“이럴거면 국영으로 묶어 관리하자”



한겨레

한국 동물원이 성장하려면 동물원의 미래를 고민하고 동물복지, 동물원의 존재 이유 등을 고민하며 실력을 쌓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구조적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한다. 카자 협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동물원에서 사람들이 코끼리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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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은 사람을 정기 건강검진하듯 주기적으로 매년 동물을 마취해서 검사하고 다시 깨게 하곤 하는데, 만약 한국 동물원이라면 동물이 마취에서 못 깨어날 수도 있다.” 국내 한 동물원 수의사가 말했습니다. 동물원 동물을 치료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전제하고서라도 그만큼 동물에 대해 잘 모르고 진료 실력이 부족하다는 고백입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외국은 동물의 70%를 건강검진을 해 병을 예방한다면 한국은 10%도 못 한다” 했습니다. 교육과 보전이 동물원이 담당해야 할 미래 과제라면, ‘실력 키우기’는 현재 숙제입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국내 동물원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참석은 하되 토론 참여 없이 참관하여 동향 파악을 하고, 공식적 의견은 김두관 의원실과 환경부에 공문으로 전달한다. 기존 토론회 경험상 업체의 발언은 공격 대상이기에 현장 발언은 삼가고 문서로 업계 의견만 전달한다. 참석 원하는 업체는 참석한다.”

지난 6월말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 회의실에서 열린 사단법인 카자(KAZA, Korean Association of Zoos and Aquariums, 옛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 회장단 회의에서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준비한 동물원법(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 토론회 참석을 두고 결정한 내용이다. 돌고래 사육으로 몇년 새 동물보호단체와 언론,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아 온 일부 수족관들은 토론회 참석을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원법은 지난 6월 시행됐지만, 동물원을 제재하는 실효성이 없다는 동물보호단체의 지적으로 개정 요구를 거세게 받고 있다.

카자는 대중에게는 생소하지만, 동물원 업계의 구심점 구실을 해야 할 민간단체이다. 1985년 활동을 시작해 1994년 법인 등록을 했다. 동물원과 수족관 쪽의 이익단체로 꼽힌다. 서울동물원, 대전오월드, 청주동물원, 광주우치공원, 전주동물원 등 주요 공영동물원과 에버랜드, 제주 퍼시픽랜드, 한화호텔&리조트, 롯데월드아쿠아리움, 국립생태원 등 국내 대형 동물원과 수족관 20곳과 운송업체 1곳 등 21곳이 기업회원사로 가입해 있다. 현재 서울동물원이 협회장으로, 1명이 상근한다. 최근 카자는 회원승인 절차를 없애 소형 동물원, 개인 회원사를 늘리려 하고 있다.

일부 동물원 업계 관계자는 일부러 카자 회의 등 참가를 회피했다. 이들은 카자의 역할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정기 이사회 몇번 하는 것이 전부. (같이) 술 마시고 (이사들은) 거수기 (역할)”, “세계 동물원들과 연결된 서울동물원과 에버랜드가 그나마 소식 전해주는 곳”, “전문성도 없고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익집단”, “앞으로 참석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등 낮게 평가했다.

카자도 이런 평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카자 쪽은 “회원사 수준을 높여 한국의 동물원과 수족관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기관이 되도록 세미나를 여는 등 노력 중이다. 해외에서는 체계화된 종 보전을 위해 혈통관리나 시설을 활용한 환경교육 실행, 전문인력 양성을 하는데 (국내는) 한정된 재정과 인력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답했다.

세계적 수준의 동물원들은, 한국이 변화하려면 카자가 이익집단에 그쳐서는 안되고, 동물원 스스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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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릴랜드주의 실버스프링에 있는 아자 사무실에서 수석부사장 롭 버넌(왼쪽)와 데니 루이스가 취재진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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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사를 쫓아내는 미국 아자

지난 6월13일 미국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의 실버스프링에 있는 미국 아자(AZA, Association of Zoos and Aquariums)는 한국 카자와 많이 달랐다. 미국 2400개 동물원 중 230개 동물원만 회원으로 승인하는 아자에는 회원 기준이 따로 있다.

동물보호단체도 인정할 만큼 아자의 평가 항목은 세부적이다. 동물 관리와 복지, 수의 관리, 교육, 보존과 과학적 발전, 비전과 임무, 사업계획, 재정, 서비스, 보안과 안전, 건축물, 지원 단체와의 파트너십 등 항목만도 빼곡하다. 또 아자 인증 관련 시설들은 지역과 주, 연방 법과 규제를 따를 것을 전제로 한다. 회원 가입은 점검 당시 상태에 한해 승인하기 때문에 5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아자 회원사를 대상으로 한 코끼리 번식 기준만 보면 “번식 시설에는 임신과 분만기간 동안 산모를 보살피고 출산 직후 새끼의 안전에 대한 출산 규약이 있어야 한다”는 코끼리 사육자료 가이드와 출산규약이 따로 있다. 사람이 양육한 코끼리의 경우 사람이 기르는 인공포육이 필요할 때에는 예정 분만일 30일 전까지 출산과 이후 어미와의 최대한 빠른 재회 규약을 준비할 것을 요구하하는 등 체계적이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국회 입법조사처의 ‘동물원 내 근친교배’ 보고서를 보면, 아자는 2011년 이미 백호를 만들기 위한 의도적 근친교배를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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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물원 2400여개 중 230개만 아자 회원사이다. 롭 버넌 아자 수석부사장(왼쪽)과 데니 루이스 수석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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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에는 직원 40명과 동물복지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일한다. “동물원에 고용된 과학자들과 일하기 위해서”라고 그들은 답했다. 경험이 많은 동물원 내부 사람과 외부 사람 등 12명으로 위원회를 꾸려 기준을 만들고 동물복지를 강조하는 이들에게서 감사도 받는다. 아자는 그 기준을 지키지 않는 회원사는 아자에서 쫓아낸다. 데니 루이스 인가 프로그램 수석부사장이 말했다. “1975년부터 70번 정도 회원을 쫓아내봤어요. 대부분 한 해 지나 더 나은 기관이 되어 우리를 찾아와요.”

동물의 철창에 들어가면 안 되고, 직접 동물을 만져서도 안 된다. “동물원이 동물의 집사이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날 경우 직접 조사를 나가 다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처한다.

“좋은 동물원은 동물을 위해 일하는 곳이고, 나쁜 동물원은 동물이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 있어요. 한국의 동물원법에 대해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합니다. 우리는 항상 미국 연방정부의 법 그 이상을 지켜왔습니다. 최소한의 규칙도 지키지 않으면 (아자의) 감사가 올 것이란 두려움이 동물원 운영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롭 버넌 아자 수석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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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버넌 아자 수석 부사장은 한국 동물원들이 나라가 정한 법을 지키면서 자체적으로 기준을 만들어 동물원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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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 쌓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

카자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결국 소속 동물원 수준을 끌어올려야만 한다. 서울동물원, 에버랜드, 한화호텔&리조트 등이 세계적 동물원들과 연결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국내 동물원이 세계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계속 뒤처지는 현실에 대해 이제는 동물원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조차 터져나온다.

올해 <한겨레>가 만난 공영동물원 업계 관계자,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등 20여명은 공영동물원 직원 ‘순환보직의 문제’를 언급했다.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공무원 신분이다보니 동물원에 오래 있고 싶어도 떠나야하는 문제, 또는 관리자로 새로 오는 공무원이 동물원에 대한 이해가 적은 문제, 배울 만하면 떠나야 하는 문제 등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역의 공영동물원장은 행정직 6급 또는 5급 공무원이 맡는다. 시청에서 시장 곁에서 일하다가 동물원으로 온 경우라면 일종의 한직으로 밀려났다는 인식이 강하다. 또는 퇴직이 가까워서 쉬러 가거나. (이때문에) 그냥 사고만 나지 않고 지키다 가도 된다. 하급 직원들도 동물원이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하는지 공부를 해야 하는데, 알 만하면 떠난다”고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현직인 한 동물원 수의사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놨다. “대부분의 동물원이 수의사, 사육사 한두 명이 수백마리의 동물을 돌본다. 동물원 수의사로 지내면서 맹수 마취 한 번 해본 게 대단한 경험이니 전문성이 쌓일 기회가 있을 수가 없다”면서도 “정말 동물이 좋아서 동물원에만 오래 있으려면 승진을 포기해야 한다. 식품위생, 가축검역 이런 거 하고 (동물원에) 오면 ‘공무원 물 빼라’고 말해준다. (이렇게 순환보직을 유지해야 한다면) 동물원끼리 순환하는 동물원직군을 따로 만들어주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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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물원 호랑이사를 방문한 한 여성이 호랑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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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가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동물원 관계자들은 동물원의 미래를 위해 차라리 지방자치단체 소속인 공영동물원의 국영화를 요구한다. 구심점이 되는 한 곳에서 퇴보하는 공영동물원을 끌어당겨 더이상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하나의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서는 결코 동물원이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패배감과도 연결됐다. 수도권 아닌 지역의 한 동물원 관계자는 “국영이 아니라도 한 기관에서 서로 묶어 관리했으면 한다”며 “지역을 떠나야 하는 단점은 있어도 동물원을 원해서 온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실버스프링/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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