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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TOPIC] LH 공공주택 후분양제 시행 파장 민간 확대땐 분양가 급등·주택공급 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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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정부가 아파트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서울주택도시공사가 후분양제로 공급한 은평뉴타운.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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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아파트 후분양제를 전격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뜨겁다. 소비자 실익을 위해 일단 공공주택부터 적용하겠다는 방침인데 민간주택까지 확대할 경우 부작용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부문에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민간에서 후분양제를 유도하는 ‘후분양제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후분양제란 아파트를 착공하기 전 분양하는 선분양제와 달리 건설 공정이 80% 이상 진행됐을 때 입주자를 모집하는 제도다. 현행법에선 선분양이나 후분양이 의무화된 건 아니지만 선분양제는 그동안 보편적인 분양 방식으로 운영돼왔다.

선분양제는 주택 공급이 부족했던 1977년부터 국내 아파트 시장에 도입됐다. 당시만 해도 국가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정부 부담 없이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선분양제를 둘러싼 우려도 만만찮았다. 선분양제가 분양권 전매를 통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건설사들이 사업 위험을 과대평가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인식 탓에 참여정부는 분양권 투기 근절 등을 목표로 2003년 단계적인 후분양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2008년 MB정부에서 중단됐다.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주택 가격이 오를 거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울시가 은평뉴타운 아파트를 공급할 때 후분양제를 적용했지만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진 않았다.

한동안 후분양제 얘기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최근 아파트 부실시공 논란이 벌어지면서 다시 이슈로 부상했다. 부영이 시공한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 아파트에서 무더기 하자가 발생하면서 수요자들이 직접 주택을 보고 구입하는 후분양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국토부 하자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 조정 신청 건수가 2011년 36건에서 지난해 3880건으로 급증하는 등 부실시공으로 인한 분쟁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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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공부문부터 도입”

중소 건설사 도산 우려도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게 바뀔까.

소비자가 어느 정도 지어진 아파트를 보고 계약해 부실시공, 하자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아파트 단지의 층·향을 확인하고 분양 신청을 하는 만큼 일명 ‘깜깜이 분양’ 폐해도 막을 수 있다. 분양권 전매 투기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지난해부터 올 8월까지 거래된 분양권 금액만 100조원에 달할 정도로 아파트 분양 투기 수요가 늘어난 만큼 부동산 투기를 막는 효과가 상당할 전망이다.

문제는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선분양제에선 소비자들이 계약금, 중도금, 잔금 형태로 분양대금을 2년 6개월~3년 동안 조금씩 나눠 낸다. 중도금 무이자 조건을 적용한 단지의 경우 초기 계약금만 부담하면 입주할 때까지 자금 걱정이 없다. 하지만 후분양제 아래선 소비자들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계약 후 짧게는 6개월 내에 수억원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내집마련 부담이 커진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후분양제가 그리 달갑지 않다. 선분양제 시절과 달리 계약금, 중도금을 못 받아 거액의 공사대금을 자체 조달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자연스레 금융비 등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돼 분양가가 치솟을 거란 우려도 크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국토부 장기주택종합계획에 따라 2022년까지 연평균 38만6600가구를 건설하는 경우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추가 조달 자금이 연평균 35조4000억~47조3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 때문에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건설사들이 분양을 미뤄 연평균 10만가구 안팎 주택 공급이 줄어들고 분양가도 3~7%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덩달아 소비자 대출 이자 부담도 늘어난다.

특히 재건축 단지의 경우 아파트 착공 후 부동산 경기 악화로 공정에 차질이 생기면 조합원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짓고 난 후에도 팔리지 않는 ‘악성 미분양’ 물량이 지방 곳곳에서 쏟아질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재무구조가 탄탄하지 않은 중견 건설사는 물론이고 주택 전문 건설사들조차 분양을 꺼려 신규 주택 공급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대형 건설사 독식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서울 강남권과 다른 지역 간 부동산 시장 양극화가 더욱 심각해질 거란 관측도 나온다. 지방에선 미분양을 우려한 건설사들이 공급을 꺼려 분양가가 떨어질 수 있지만, 입지가 좋은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경우 분양가가 오히려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현재 분양보증 권한을 쥔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와 경기 과천시 등을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해 주변 분양가보다 10% 이상 높게 책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실상 분양가를 제한하고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최근 분양한 서초구 신반포센트럴자이, 강남구 래미안강남포레스트 등은 3.3㎡당 평균 분양가가 시장 예상보다 300만~400만원가량 낮게 책정돼 ‘로또’ 논란을 불러왔다. 게다가 오는 10월 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강남권 아파트 일반분양가가 10% 이상 낮아져 조합원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단지 일반분양가가 낮아질수록 조합원이 내야 할 분담금은 많아지는 구조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분양제 아래선 주택도시보증공사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분양가를 마음껏 높일 수 있다. 아파트 골조공사를 3분의 2 이상 진행한 후 분양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 분양보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 최근 서울 강남권 인기 단지 재건축조합이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제를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9월 초 서울 서초구 ‘신반포15차’ 재건축 시공사로 선정된 대우건설은 “조합이 원하는 시점으로 분양 시기를 늦출 수 있다”며 일명 ‘골든타임 후분양제’를 제안해 수주에 성공했다. 강남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수주 경쟁에서도 현대건설, GS건설 모두 ‘후분양이 가능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도 후분양제 부작용을 모르는 건 아니다. 때문에 공공부문부터 우선 시행한 뒤 후분양제를 실시하는 민간 건설사에 대출보증 지원, 공공택지 우선 공급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 하지만 LH가 공급하는 공공분양 물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만큼 후분양제 도입 실효성이 떨어질 거란 우려도 나온다. LH의 공공분양 주택 공급 물량은 2012년 2만5400여가구에서 지난해 1만3000여가구로 감소했고 올해는 1만가구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일괄적인 후분양제 도입 대신 시장 반응을 지켜보고 단계적으로 후분양제를 도입해 건설사,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후분양제를 법적으로 강제하면 중소 건설사들이 줄도산할 우려가 큰 만큼 단계별로 확대해야 한다. 건설사들이 후분양제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이에 따른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후분양제를 활성화하려면 후진적인 주택금융 방식부터 개선해야 한다. 후분양제를 시행하더라도 수요가 있는 곳부터 점차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 의견도 눈길을 끈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30호 (2017.10.25~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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