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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욕설·비방 난무하는 '청소년 SNS 세상' 모른 척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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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신상 털기, 놀이처럼 여겨 …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시급 … 야단만 치지 말고 대화로 해결

#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김서연(가명·40·서울 금천)씨는 최근 아이의 스마트폰을 압수해 살펴보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SNS에 아들이나 친구들이 남긴 글이 하나같이 욕설로 차 있던 것. 다른 사람의 외모 등을 비하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글들도 눈에 띄었다. 김씨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단어들이 아이 SNS에 적힌 걸 보니 무섭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 중학교 3학년 딸을 둔 이지희(가명·42·경기 수원)씨는 최근 딸을 크게 야단쳤다. 딸이 SNS상에서 다른 아이들과 말싸움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다. 이씨는 "딸이 '너 길에서 만나면 죽여버린다' 식의 글을 남긴 것을 보고 놀랐다"며 "딸이 '이 정도 말은 다들 쓴다. 진심도 아니고 그냥 겁주려고 하는 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청소년의 SNS(Social Network Services·사회관계망서비스) 이용이 급증하면서 자녀와 갈등을 겪는 사례가 늘었다. 학부모 커뮤니티에선 "(내 아이에게 실망할까 봐) 무서워서 아이 SNS를 못 보겠다"는 말도 나온다. 중 2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아이 SNS를 보고 마음에 안 드는 글에 대해 지적했더니 아이가 (부모가 보지 못하게) 바로 잠가버리더라"며 "그 뒤론 그냥 못 본 체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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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유해 매체·정보 접하는 통로

SNS는 최근 청소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미디어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올 초 발간한 '2016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의 SNS 이용률은 6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SNS 이용률이 늘면서 그에 따른 문제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청소년이 SNS를 통해 유해 정보나 매체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중학교 3학년인 강동민(가명)군은 "SNS에서 도박 사이트나 성인 사이트 광고 등을 심심찮게 본다"며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자극적인 글이나 사진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유튜버나 BJ(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들이 조회 수를 높여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든 자극적인 동영상도 SNS를 통해 청소년 사이에 퍼져 나가는 경우가 많다. 10대들이 자주 쓰는 '앙 기모띠'라는 말도 한 유명 BJ가 일본 AV(성인 비디오)에 나오는 '기모치 이이'('기분 좋다'는 뜻의 일본어)를 변형해 사용하며 유행됐다. '느금마' 등 상대방 부모를 비하하는 표현은 물론이고, 여성이나 장애인, 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마치 '농담'처럼 아이들의 SNS에 오르내린다. 중학교 2학년인 이희수(가명)군은 "나쁜 말인 걸 알더라도 주변 친구들이 다 쓰는 말이다 보니 별 죄책감 없이 사용한다"고 했다.

◇SNS에 올린 글, 어떤 결과 낳을지 생각 안 해

청소년의 SNS 사용 증가세와 비교하면 이에 대한 교육은 미미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온라인상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모욕하는 것이 '범죄'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청소년이 드물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요즘 여중생 사이에선 왕따 놀이가 성행한다"며 "돌아가면서 한 명씩 따돌리는 것을 일종의 놀이처럼 여기는데, '우리 이러다 큰일 나는 것 아니야?'라고 얘기하면서도 실제로 그럴 리가 없다거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SNS에 경솔하게 글을 쓰고, 유행하는 글이나 사진을 공유하면서 퍼트리는 태도도 문제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사진 도용이나 신상 털기 같은 일이 SNS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아이들은 이것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다"며 "또한 자신이 온라인에 남긴 글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고교 교사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남긴 글이나 사진을 추적해 악성 댓글을 달고 이를 퍼트리면서도, 반대로 그러한 자신의 행적이 다른 사람에 의해 추적돼 평가받거나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요즘 같은 시대엔 인터넷에 남긴 행적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고 충고한다. 일례로 미국에선 대학 입시에서 지원자의 SNS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 7월엔 하버드대가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채팅방에서 노골적인 성적(性的) 대화와 사진을 주고받으며 인종차별적 발언까지 한 사실이 발각된 입학 예정자 10여 명의 합격을 취소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보도돼 화제가 됐다. 미국의 한 입시정보기관이 대학 입학사정관 3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중 35%가 '지원자의 SNS 내용을 확인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는 꼭 남의 나라 얘기인 것만은 아니다. 한 대학 입학사정관은 "올해 8월경 입학사정관협의회 임원진이 모여 회의하던 중 SNS가 거론된 적 있다"며 "(실행되진 않았지만) 지원자 인성을 확인하는 방법의 하나로 SNS 활용을 (대학 등에) 건의하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온 적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입학사정관은 "사실 1단계 합격자 가운데서만 SNS를 확인한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도 "다만 지원자의 사적인 얘기가 담긴 SNS를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 마라' 잔소리 안 먹혀… 대화 통해 스스로 생각하게 해야

교육 전문가들은 가정·학교에서의 인성교육과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교육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디지털 리터러시란 디지털 기술(정보)을 이해하고,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를 아는 능력을 뜻한다.

문우일 서울 세화여고 윤리 교사는 "이런 문제는 가정 내 부모·자녀 관계가 탄탄해야 해결할 수 있다"며 "밖에서 있었던 일을 아이가 터놓고 부모에게 말할 수 있는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아이가 친구 SNS에서 어떤 글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을 때 이를 부모에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걸 말하면 엄마 아빠가 그 친구와도 못 놀게 하고 SNS도 못 하게 할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 아이는 절대로 부모에게 말하지 않아요. 요즘 아이들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해 주면서 대화의 창을 열어 두세요." 송지희 부모력연구소장의 조언도 이와 비슷하다. 송 소장은 "요즘 아이들은 초등생 때부터 SNS 등을 통해 음란물이나 유해 정보를 접한다"며 "이를 알았을 때 회피하거나 야단만 칠 게 아니라, (음란물 속 내용은) 누군가 꾸며낸 거짓이며 현실과 다르다는 점을 대화로 분명하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성 교육도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묘은 디지털리터러시교육협회 부회장은 "학교에서 '사이버 폭력 예방' 강연을 많이 했지만, 청소년들은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고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더라"며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방향으로 교육법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를테면 '카드 뉴스' 제작 방법을 가르치면서 '사이버 폭력'에 대한 내용으로 만들게 하는 식이다. "스마트 기기의 다양한 활용법을 알려주면서 여기에 인성 교육을 접목했더니 효과가 훨씬 좋았습니다. 예컨대 네이버 데이터랩이나 구글 트렌드 같은 빅데이터 분석 도구를 활용하게 했더니, 처음에는 연예인이나 맛집 조사를 하던 아이들이 나중엔 청소년법이나 장애인 차별, 학교폭력, 왕따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검색하고 생각할 거리를 찾더라고요. 무작정 '하지 마라' '그건 나쁜 일'이라고 말하기보다 아이들이 흥미 가질 만한 것을 찾아주고, 그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대화하게 하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오선영 조선에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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