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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설]신고리 입장 발표한 文, 국익 위한 ‘공약 철회’ 주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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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결과에 대한 대통령 입장’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시민참여단은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결과에 대해서도 승복하는 숙의(熟議)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줬다”며 “그 결과에 따라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이미 천명한 대로 탈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며 더 이상의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중단하고 설계수명을 연장한 월성 1호기의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공사 중단이라는 저의 공약을 지지해주신 국민들께서도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존중하고 대승적으로 수용해 달라”고 당부한 데서 공사 재개로 공수(攻守)가 바뀐 갈등이 재연돼선 안 된다는 대통령의 고민이 읽힌다. 다만 시민참여단이 건설 재개 권고를 통해 ‘급격한 탈(脫)원전’을 우려했음에도 이를 밀어붙이겠다고 밝힌 것은 유감이다. 대통령은 ‘원전 축소’ 의견이 53.2%로 나온 시민참여단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반대 의견을 배려한 보완대책까지 제시했다”고 했으나 이는 탈원전 여부에 대한 의견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원전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약(弱)원전’ 정책방향을 탈원전 추진의 근거로 내세운다면 견강부회(牽强附會)다.

471명의 집단지성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2조6000억 원이라는 매몰비용과 많은 일자리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건설 중인 원전 공사를 중단시키겠다는 무리한 공약을 철회토록 하는 ‘명예로운 회군(回軍)’ 통로를 열어줬다. 그러나 굳이 공론화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매몰비용과 수많은 일자리를 잃는 공약을 자기 손으로 거둬들였다면 더욱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말 위에서 전투를 벌이는 선거 때와 말에서 내려 통치하는 때는 분명 다르다. 국정을 운영해보고 현실에 맞지 않는 공약을 폐기하거나 재조정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참에 대통령과 정권 수뇌부는 대선 공약이나 대통령의 약속 가운데 국리(國利)와 민복(民福)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 없는지 꼼꼼히 따져보길 바란다. 당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부정적이며 국회 비준까지 주장했던 문 대통령은 북핵 위협 증가와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입장을 선회했다. 최소한의 자위적 방어무기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바른 결정이었다.

공시족을 양산한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도 일자리의 보고(寶庫)인 민간부문의 고용창출 능력 확대가 맞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재고가 필요하다. 사업장별 특성이나 업무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임기 내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또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이 현실화되면 경제성장률이 최대 0.12%포인트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도 나왔다. 이외에도 설익은 공약이란 비판을 받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고교 내신에 절대평가 도입’을 비롯해 재조정이 필요한 사회 분야 공약도 적지 않다.

곧 정권 출범 반년이다. 아무리 대통령직 인수 기간 없이 출범한 정부라도 반년쯤 국정을 운영해 보면 선거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이다. 나라살림을 보는 시야도 넓어진 만큼 바꿀 것은 제때 바꿔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자 협치(協治)다.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공약을 붙들고 있는 것은 소신이 아니라 아집(我執)이다. 국민도 나라를 위해 자신의 말을 바꾸는 치자(治者)의 고민과 결단을 이해하고 힘을 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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