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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책 속으로] 과학계 ‘왕따’ 자초한 천재의 쇠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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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아인슈타인 일생 최대의 실수 표지


아인슈타인 일생 최대의 실수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

위대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도 인간이다. 업적과 함께 오만과 고집도 삶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는 만년의 수십 년 동안 주류 연구에서 소외됐다. 할리우드 스타나 행사장, 산책길에서 만난 ‘팬’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과학계에선 외면당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옥스퍼드대에서 강의했던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지은이는 그 원인을 자업자득에서 찾는다. 배경에는 아인슈타인이 젊은 시절 겪었던 ‘과학적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 1905년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5년 방정식을 또 발표했다. 공간과 시간의 특징과 블랙홀의 존재 이유, 우주의 시작과 끝을 설명하는 훌륭한 업적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내비게이션의 바탕도 제공했다.

그런데 1917년 발표된 천문학적 관측 결과가 이에 들어맞지 않았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기꺼이 관측 결과에 맞춰 공식을 수정했다. 미봉은 더 큰 사고를 불렀다. 몇 년 뒤 천문학 관측이 잘못됐으며 아인슈타인의 원래 방정식이 옳은 것으로 밝혀졌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내 일생 최대의 실수’라고 했다.

실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픈 경험은 아인슈타인을 쇠고집으로 바꾸면서 재앙으로 번졌다. 자신의 이론에 누군가 합리적인 근거를 대며 오류를 지적해도 이를 무시하는 습관이 아인슈타인의 발목을 잡았다. 나중에 바로 잡힐 것을 굳게 믿으며 고집스레 버텼다.

특히 양자역학 등 초미시 세계에 대한 놀라운 연구 결과가 자신의 업적에 도전하자 아인슈타인의 고집은 절정에 이르렀다. 인간으로선 그럴 수도 있지만 ‘위대한’ 과학자가 취할 태도는 아니었다. 고집은 업적을 잠식했다. 명성은 추락했다. 아인슈타인의 사연을 읽다보면 현대 물리학의 흐름도 손에 잡힌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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