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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매경춘추] 노후의 나력(裸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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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집에서 조금 벗어나면 논밭이 있는 벌판이 있어 가끔 산책을 한다. 1월의 추운 날씨였다.

앙상한 나무들을 보며 걷고 있는데 참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길 옆에 서 있었다. 잎이 다 떨어진 참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너무 당당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라 사진을 찍어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잊히지 않고 화두처럼 머리에 맴돌았다.

'노후에 우리는 사회에서 걸치고 있던 이런저런 옷을 벗어던질 텐데, 그럼에도 당당한 모습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던 중 책을 읽다가 우연히 19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A. Tennyson)이 쓴 '참나무(The Oak)'라는 시를 보게 됐다.

테니슨이 80세에 이 시를 썼다고 하니 말년에 관조한 인생을 참나무에 비유해 노래한 셈이다. '인생은 이렇게 살라'는 것으로 시는 시작된다. 봄, 여름, 가을을 언급한 뒤 겨울에 이르러서는 줄기와 가지만으로 우뚝 서 있는 참나무의 벌거벗은 힘(裸力)을 보라고 말한다.

노후는 벌거벗었지만 초라하지 않은 당당한 삶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노후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다. 나이 칠십을 넘어서도 당당한 위엄을 갖춘 노년의 초상화가 있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조차 놀림을 받는 노인을 그린 그림도 있다.

사회에서 물러나고, 자식은 제 갈 길을 찾아가고, 따르는 사람들은 없어지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눈길마저 달라지고, 급기야 나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을 때, 노후에 이르러 무성한 잎들이 떨어져 벌거벗을 때도 당당함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참나무처럼 멋진 줄기와 가지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후의 튼튼한 줄기와 가지는 돈, 건강, 관계, 일 등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2% 부족하다. 인생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가져야 하고 깊어져야 한다. 이 길은 모범답안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성찰을 통해 각자가 만들어가야 한다.

노년의 비교우위는 이러한 성찰에 있다. 노후의 나력은 소득, 건강, 관계, 일 네 가지에 성찰이라는 덕목이 덧붙여져 만들어진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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