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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월드리포트] 분슌 vs 신조 日 잡지 전쟁으로 밝혀진 한국 기사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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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시사 주간지 '슈칸 분슌'(주간문춘/왼쪽)과 '슈칸 신조'(주간신조/오른쪽)입니다. 일본잡지협회에 따르면 올 2분기(4-6월) 남성 종합주간지 부분 1위는 슈칸 분슌으로 발행부수는 65만 9천 부입니다. 슈칸 겐다이(주간현대)가 2위로 47만 4천여 부, 슈칸 신조는 3위로 43만 7천여 부를 기록했습니다. 1위인 분슌을 2,3위인 겐다이와 신조가 쫓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분슌과 신조는 50대 이상 주독자 층이 겹치고 있어 경쟁 심리가 대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두 잡지의 치열한 경쟁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낳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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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어제 발간된 신조 최신호에서 터졌습니다. 신조는 이번 호에서 분슌이 2015년 4월 게재한 '역사적 특종, 한국군에게는 베트남 위안부가 있었다. 미 극비문서가 폭로한 박근혜의 급소' 기사가 조작됐다고 폭로했습니다. 기사 기고자는 당시 TBS방송국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야마구치 노리유키 씨(현재 시사평론가이자 방송인)입니다. TBS 때부터 아베 총리 담당기자로 친분이 두터운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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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분슌 기사에서 야마구치 씨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워싱턴 특파원 업무를 하며 틈틈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자료를 조사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군의 행실에 상당히 곤혹스러워 했다. 하지만, 어떤 자료에도 위안부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서 범죄기록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때 미군 사령부가 한국군 최고사령관 채명신 장군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한국군이 미 군수 물자를 대량으로 빼돌린다는 내용인데, 범죄 무대 가운데 하나가 시내 중심에 있던 '터키탕'(the Turkish bath)이었다. 미군이 조사해보니 그 터키탕에선 매춘 행위가 벌어지는 한국군 전용 위안소(Welfare Center)였다. 이후 수소문 끝에 호치민을 시작으로 남베트남 전쟁터를 돌아다녔고 한국군 사정도 잘 알았던 앤드류 핀레이슨 전 해병대 부대장과 만났다. 그는 "한국군 위안소는 확실히 사이공(호치민)에 있었다. 한국군이 베트남 여성을 강간하거나 개별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성병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안소 내 여성들은 대부분 베트남 농촌 처녀들이었다"라고 말했다."

신조가 이 기사에 나온 앤드류 핀레이슨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신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사이공에서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고, 한국 해병대와 지낸 시간은 불과 2시간 정도였다. 취재 당시 위안소(Comfort Station)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사이공에서 5년 정도 지낸 사람에게도 물어봤는데, 그런 장소를 모른다고 했다. 그런 곳이 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헌병대가 알지 난 모른다." 신조는 핀레이슨 씨와의 인터뷰 동영상도 공개했습니다. [유튜브 영상(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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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는 "야마구치 씨가 언급한 미 공문서에도 '위안소'나 '위안부'라는 단어는 없었으며 매춘 시설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그곳이 한국군 전용시설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신조가 분슌에 크게 한 방 먹인 셈입니다. 지난 5월에도 신조는 분슌 직원이 자사의 기사를 빼돌렸다고 공격했습니다. 일본 잡지사들은 발매 전 주요 기사의 제목들을 담은 지하철 광고를 만드는데, 분슌 직원이 이 광고지를 빼돌려 몰래 복사해갔다는 겁니다. 근처 편의점에서 복사하는 분슌 직원의 사진까지 실었습니다. 분슌은 결국 9월 일부 사실을 인정하고 신조에 사과문을 보냈습니다. 기사 자체를 베끼지는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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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잡지사의 경쟁과 갈등으로 한국 관련 기사의 조작 여부가 밝혀진 셈입니다. 개인적으론 경쟁사의 기사 조작을 밝히기 위해 미국 출장까지 떠났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물론 일본 잡지사들의 취재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

분슌의 경우 신조에 의해 잇따라 상처를 입고 있지만, 여전히 부동의 1위입니다. 지난해와 올해 특히 특종 기사들이 많아서 분슌이 쏘는 대포 기사, 일명 '분슌호'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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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책에도 세세한 특종 방법은 공개돼 있지 않습니다. 일본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매주 250개의 기사 아이템 가운데 20여 개를 골라 각 아이템마다 5-10명씩 기자를 배정한다고 하는군요. 스타 기자(팀장급)들에게는 무제한의 신용카드도 제공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취재기간이 1년 이상인 것도 많습니다.

일본에서도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의미의 '메스코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메스컴+고미(일본어로 쓰레기)의 합성어입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기자들에게 보다 올바른 취재방식과 보도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야마구치 씨의 경우 날로 우경화되는 일본 사회에 더욱 잘 팔리는 기사를 만들려고 했을 겁니다. 우리 기자들도 그런 유혹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개인적으로 한국 관련 기사의 조작이 드러났다는 의미를 넘어 올바른 기자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최호원 기자 bestig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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