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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한국 석유화학 호황 비결 | 글로벌 경기회복에 제품 마진 고공행진 해외기업 M&A·품목 다각화 전략 주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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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깜짝 호황’을 누리는 비결은 뭘까. 불황을 겪던 시절 선제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때마침 세계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급증한 것도 영향을 줬다.

매경이코노미

미국 동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로 한국 석유화학 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미국 텍사스주 패서디나의 석유화학시설들이 폭우로 물에 잠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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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하락 예상하고 과감한 투자

▷에틸렌·PX 공장 투자로 빛 봐

SK그룹이 2006년 옛 인천정유를 인수해 출범한 SK인천석유화학은 인수 초기부터 설비 노후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불황에도 1조6000억원을 투자해 PX(파라자일렌) 공장을 대대적으로 증설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석유화학 제품 생산 규모를 연간 130만t으로 늘렸는데 최근 원재료 나프타와 PX 제품 가격 차이가 커지면서 실적이 급등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3745억원 영업이익을 올렸고 올해도 5000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대한다.

석유화학 업계가 잘나가는 건 과감한 신규 투자와 증설이 한몫했다. 한동안 국제유가가 치솟자 수익성이 악화된 글로벌 석유화학업체들은 신규 투자를 줄이면서 몸 사리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보고 너도나도 생산설비 증설에 나섰다.

석유화학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국내 업체들은 왜 증설에 베팅했을까. 먼저 국가별 에틸렌 생산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내 업체들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NCC(나프타분해시설) 방식이다. 그만큼 국제유가 의존도가 높다. 저유가 시대가 오면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는 국내 업체들에 유리한 구조다. 비록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석유화학 업황이 침체됐지만 국내 업체들은 사이클상 머지않아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호황을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국제유가가 배럴당 40~50달러로 안정세를 보이면서 비로소 한국 특유의 생산 방식이 효과를 봤다는 평가다. 생산설비를 대거 증설한 덕분에 에틸렌뿐 아니라 벤젠, PX, BD(부타디엔) 등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업체마다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주로 셰일가스에서 에틸렌을 뽑아내는 ECC(에탄크래커) 방식을, 중국은 CTO(석탄분해설비)를 이용해 에틸렌을 생산한다. 미국은 국제유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석유제품 나프타가 아닌 셰일가스 기반의 ECC 방식을 채택했지만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는 평가다. 최홍준 한국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 과장은 “2010년대 초반 원가 경쟁력이 높은 미국 셰일가스 혁명이 터졌지만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채산성이 악화됐고 호황을 누리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북미 셰일가스 채산성이 낮아지면서 나프타 기반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었다는 의미다.

중국 역시 유가가 고공행진할 것으로 보고 석탄분해설비를 고집했는데 유가가 떨어지면서 패착이 됐다. 중국은 2014~2015년 값싼 석탄을 이용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대부분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증설에 실패했다.

▶과감한 연구개발&인수합병

▷롯데케미칼 동남아 타이탄 M&A 잭팟

석유화학업체마다 연구개발(R&D)을 늘려 고부가 석유화학 제품 개발에 나선 것도 비결로 꼽힌다. LG화학의 R&D 투자액은 2014년 5100억원에서 지난해 6800억원으로 35%가량 늘었다.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3%를 넘는다. 올해도 1조원가량을 R&D에 쏟아붓기로 했다. 덕분에 LG화학이 생산하는 고부가 석유화학 제품(폴리올레핀, 고부가합성수지(ABS), 엔지니어링플라스틱, 차세대 고흡수성수지(SAP) 등) 매출은 2013년 2조원에서 지난해 3조원으로 급증했다. 고부가 화학제품은 수익성도 높아 글로벌 환경 변화에 덜 민감한 것도 매력이다.

전략적 M&A도 효과를 봤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석유화학부문을 그룹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왔다. 2003년 현대석유화학을, 2004년 케이피케미칼을 인수하면서 석유화학 사업 덩치를 키웠다. 2015년엔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현 롯데첨단소재)과 삼성정밀화학(롯데정밀화학), 삼성BP화학(롯데BP화학) 등을 인수하며 석유화학 사업 수직계열화에 힘썼다.

특히 동남아시아 화학사인 타이탄을 인수하면서 글로벌 화학회사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다. 롯데케미칼 타이탄은 말레이시아 등에 사업장을 둔 화학사로 2010년 당시 호남석유화학이 지분 100%를 1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2조2851억원, 영업이익 5059억원을 올린 알짜회사로 탈바꿈했다. 최근엔 말레이시아 증권거래소 상장을 통해 인수 7년 만에 기업가치를 2.5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번에 상장된 주식 수는 4조원 규모로 말레이시아 전체 상장사 중 시가총액 기준 30위권에 올랐다. 2010년 이후 아시아 유화 업계 최대 규모다.

▶미국 허리케인 여파로 반사이익

▷글로벌 경기회복에 마진 늘어

미국 최대 정유화학시설 단지가 위치한 텍사스주 멕시코만 지역이 허리케인 ‘하비’로 피해를 입으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기대도 크다. 허리케인 영향으로 미국 내 에틸렌 생산량의 47%에 해당하는 1800만t 규모의 에틸렌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덩달아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생산하는 에틸렌 가격은 상승곡선을 이어가는 중이다. 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에틸렌 평균 가격은 t당 1210달러로 올 2월 이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틸렌 가격에서 원재료 가격을 뺀 에틸렌 마진도 지난해 말 t당 550달러 수준에서 올 초 570달러까지 뛴 후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서 에틸렌뿐 아니라 벤젠, PX, BD 등 석유화학 제품 수요도 증가세다. PX 가격은 최근 t당 837달러로 7월 초(760달러)보다 77달러나 폭등했다. 이충재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석유화학업체 경쟁력이 높아진 만큼 세계 경제에 예상치 못한 불황이 찾아오지만 않는다면 당분간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업 다각화

▷전기차 배터리·수처리 등 신사업 진출

국내 주요 업체마다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도 주효했다. 주로 전기차 배터리, 정보전자소재, 바이오, 수처리 등 새로운 분야에 진출해 효과를 톡톡히 봤다.

LG화학이 야심 차게 뛰어든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한때 적자에 시달렸지만 유럽시장 수주가 늘면서 올 2분기 흑자로 돌아섰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한 덕분에 매출이 지난해 1조원에서 올해 1조7000억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덕분에 증권가에선 올해 LG화학 영업이익을 지난해보다 43% 늘어난 2조8508억원 수준으로 내다본다. SK이노베이션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10조원가량을 투자하기로 했다.

수처리 시장에 뛰어든 석유화학업체도 있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에서 분리막 생산 공장 착공식을 가졌다. 내년 5월 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55만㎡ 규모의 분리막이 만들어진다. 하루 22만t의 하폐수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2011년 분리막 제조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한 롯데케미칼은 2015년 2월 삼성SDI의 멤브레인 수처리 사업을 인수한 이후 수처리 사업을 계속 키워왔다.

정유사들도 기존 정유업에서 벗어나 석유화학부문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쓰는 중이다. 에쓰오일은 5조원가량을 투자해 잔사유 고도화, 올레핀 다운스트림(RUC&ODC) 공장을 내년 가동할 예정이다. 잔사유 고도화란 원유 정제 과정을 통해 원유에서 가스, 휘발유 등을 추출한 뒤 잔사유(원유를 정제해서 나오는 휘발유, 경유 등을 제외한 값싼 중질유)를 다시 투입해 휘발유, 프로필렌 등 고부가 제품을 얻어내는 공정을 말한다. 같은 양의 원유를 투입하면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어 원가 절감, 수익성 증대 효과가 기대된다.

GS칼텍스도 올해 완공을 목표로 전남 여수에 차세대 연료인 바이오부탄올 공장을 짓고 있다. 바이오부탄올은 페인트, 접착제, 잉크 등에 사용되는 기존 석유계 부탄올을 대체하는 물질이다. 휘발유와 혼합해 사용하면 별도 엔진 개조 없이 휘발유 차량용 연료로도 사용 가능하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29호 (2017.10.18~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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