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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김홍진의 스마트경영] 중소영세기업과 노동자 지원 정책 재정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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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문재인 정부 들어 재벌은 비난의 대상을 넘어 단단히 손봐야 하는 집단이 됐다. 공정거래위원장은 재벌 스스로 연내 개혁 방안을 내놓고 총수가 직접 대중과 소통하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전(前) 정권에서 이뤄진 국정 농단의 공범이라는 이유로 유죄 판결이 나왔고, 전경련 해체 압력 때문에 몇몇 재벌은 탈퇴 결정을 내렸다.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사람 중심의 경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 중소상인, 재래시장이 어려워 진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보수 정권이 시행했던 중소기업·중소상인·재래시장 지원과 대기업 규제 정책에 더해 대기업을 한층 더 옥죄고 있다. 사람 중심, 소득 주도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최저임금 1만원, 주 근로시간 52시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의 유통, 복합쇼핑몰 출점 및 영업 시간 제한으로 대기업이 얼마나 위축되고 있고, 상대적으로 중소 상인 및 재래시장은 얼마나 이익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중소 IT 기업을 돕는다고 대기업의 공공정보화 사업 진출을 제한했지만 돈을 번 중소 IT 기업은 없었다. 서로 죽는 길을 묘수라고 내 놓고 철석같이 믿는 하수처럼 보인다.

소비자의 선택을 못 받아 어려워 진 걸 대기업 탓으로 돌리니 해법이 나올 리 없다. 식당이든, 빵집이든, 시장이든, 동네수퍼든, 중소기업이든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을 아무리 제한해도 영세사업자들이 특별한 경쟁력을 지니기 전에는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결과 매년 60만개 정도의 영세상점이 새로 생기고 문을 닫고 있다. 특히 문닫는 식당은 15만개나 된다. 소비자의 권리와 대기업의 기회를 박탈하면서 아무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줘도 현재의 상태로는 품질, 위생, 서비스, 브랜드, 복합공간기능 등 영세사업자가 혼자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

부안이나 선산에서 시도했다는 재래시장과 대형유통점의 복합형 시장을 만들든,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의 프랜차이즈를 하든, 복합몰 등 대형유통의 임대매장을 운영하든 상생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서로 사는 길이다. 거기에 더해 대기업이라도 사업을 확장하게 해 지역별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총 임금 근로자 1543만명의 평균임금은 3387만원이다. 대기업 정규직은 평균 6521만원, 중소기업 정규직은 평균 3493만원이다. 상위 10%의 평균이 6600만원인 반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2000만원 이하 노동자가 33.8%인 520만명이나 된다. 4000만원 이하까지 합치면 600만명이 더해져 72.8%에 달한다.

진정으로 근로자들을 챙기려면 대기업 노조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하는, 그래서 세금도 내지 못하는 계층에 대해 살펴야 한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면 대기업 공장근로자들도 기본급과 고정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해 급여가 덩달아 올라간다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 노동자나 공기업 비정규직이 아니라 과거 청계천 피복노동자들처럼 기본도 안 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차적으로 연급여 2000만원이하인 520만명이다.

중소영세 사업장의 상당수는 20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근로자와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있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까지 안고 있다. 몇 년에 걸쳐 최저임금이 계속 인상될 경우 한계기업들이 늘어나 20% 이상의 영세사업장이 퇴출되면서 일자리의 대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계급투쟁을 방불케 한다. 대기업이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 숨죽이고 있는 사이 그 다음 힘 센 중견기업 중심의 중소기업단체와 대기업 중심의 노조가 그들의 입장에서 요구 조건들을 쏟아 내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책들이 서로 모순되고 상충하는 경우도 많다. 정작 최하위 계층의 노동자들에게는 힘이 미치지 못하고, 그들에게 닥칠 위기에 대한 대안도 없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일방적으로 가르고 중소기업을 획일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업종별, 계층별, 지역별로 세세하게 파악해 합리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 호수에서 아무리 큰 물고기를 제거해도 그 다음의 강자는 나오기 마련이다. 갑질을 없애겠다고 갑을 없애는 것은 역시 하수이다.

김홍진 전KT사장(ho123j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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