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협연중 갑자기 쓰러지자 공연 보던 의사, 무대 위로 달려가
심장충격기 요청뒤 심폐소생술…멎었던 심장, 몇분만에 다시 뛰어
“심장충격기 설치 필요성 절감”
긴박했던 순간 1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서 김용배 전 예술의전당 사장이 갑자기 쓰러지자 김진용 한국노바티스 전무(가운데 흰 와이셔츠 입은 사람·점선 안)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고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 모습은 당시 연주회 녹화 영상에 담겼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
17일 오후 8시 40분경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챔버오케스트라의 90회 정기연주회가 열리고 있었다. 인터미션(휴식시간) 전 마지막 곡인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가 끝나자 700명 가까운 관객의 박수가 쏟아졌다. 앙코르 연주까지 끝난 뒤 다시 박수가 이어졌고 피아노 연주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술의전당 사장을 지낸 김용배 추계예술대 교수(63)였다.
그런데 일어서던 김 교수가 갑자기 왼쪽으로 쓰러졌다. 고목나무처럼 뻣뻣한 모습이었다. 놀란 단원 중 일부가 악기를 바닥에 놓고 달려갔다. 무대 옆에서 공연장 직원과 기획사 관계자가 뛰어왔다. 모두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 섣불리 손을 쓰지 못했다.
그때 객석에서 누군가가 다급히 무대로 올라왔다. 공연을 보던 김진용 씨(49)였다. 내과 전문의 출신인 김 씨는 현재 다국적 제약회사인 한국노바티스 의학부의 전무로 일하며 고대안암병원 국제진료센터 교수도 맡고 있다. 그는 이날 무대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김 씨는 김 교수가 쓰러지는 걸 보고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앙코르 연주 때 목격한 김 교수의 안색이 좋지 않아서다.
“눈떠 보세요!” 김 씨가 외쳤다. 김 교수의 의식과 호흡은 없었다. 맥박도 잡히지 않았다. 심장이 멎은 것이다. 김 씨는 주변에 “119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동시에 김 교수를 똑바로 눕힌 뒤 허리띠와 셔츠 등을 풀었다. 그리고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했다. 두 손으로 가슴을 강하게 누르며 김 씨는 예술의전당 직원에게 “입구에 자동심장충격기(AED)가 있던데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곧이어 예술의전당 직원들이 AED를 가져왔다. 김 씨는 3분 간격으로 두 차례 작동시켰다. 그제야 김 교수의 심장이 가까스로 뛰기 시작했다. 호흡이 다시 돌아오면서 서서히 의식도 찾았다. 하지만 김 씨는 “아직 안심하면 안 된다”라며 계속 상태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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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와 허 씨 모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남아시아 지진해일 현장 등 다양한 해외 재난 현장 등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특히 예술의전당에 있었던 AED의 효과를 강조했다. 그는 “공공기관에 AED를 설치해 봐야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경험하고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의사로서 훈련받은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허 씨도 “예술의전당 직원들이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도와준 덕분”이라며 “누구나 교육을 받으면 우리처럼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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